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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정원수]이원석 檢총장이 前총장들에게 전화한 이유

입력 2022-09-27 03:00업데이트 2022-09-2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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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不阿貴’ 취임사 말보다 실천이 중요
민정수석실 빈틈 메우는 게 검찰 과제
정원수 논설위원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달 18일 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전직 검찰총장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많이 부족한 제가 무거운 자리를 맡았다”고 자세를 낮춘 이 총장은 전직 총장들에게 새 정부에서 검찰과 총장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검찰의 위기는 늘 있었지만 지금은 초유의 상황이다. 현직 대통령이 총장 출신이라 검찰이 어떤 수사를 하더라도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전직 총장들의 조언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이 총장은 16일 취임식에서 ‘검찰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공개했다. 이 총장은 스스로 던진 질문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검찰권을, 국민을 위해, 바른 방법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참모들을 물리치고 초안부터 직접 썼다고 하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역대 총장의 취임사 키워드를 합쳐 놓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총장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인용하면서 “법 집행에는 예외도, 혜택도, 성역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력이나 재산의 유무,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법의 잣대가 똑같아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말처럼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엄격한 법 적용은 필연적으로 적을 만들고, 저항도 생긴다. 법치를 주장했던 한비자는 도리어 모함을 받고 내쳐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비단 먼 옛날의 일만은 아니다. 총장이 엄격한 수사권 집행을 약속하면 그 말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더구나 정권 초기 총장은 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총장 취임사에서 한비자가 한동안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이유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총장이었던 김수남 전 총장이 한비자의 ‘법불아귀’를 취임사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 총장은 김 전 총장과 인연이 깊다. 2003년 김 전 총장이 대검 중수과장으로 근무할 때 이 총장이 중수부 연구관으로 발탁됐다고 한다. 공적자금 비리를 함께 수사하면서 이 총장은 기업 회계분석 등 특별수사의 기본기를 배웠다.

김 전 총장은 총장 재임 때 임명권자인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조사하고, 구속 수감하는 얄궂은 운명을 마주해야 했다. 김 전 총장은 후배들에게 ‘법불아귀’를 되풀이하면서 “검사는 그래야 한다”며 수사를 밀고 나갔다. 당시 이 총장은 국정농단 사건의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투입돼 현직 대통령을 직접 신문했다. 이 총장이 김 전 총장에게 수사 내용을 대면 보고하면서 느낀 바가 많았을 것이다. 취임사가 비슷한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던 셈이다.

시대에 따라 해법이 달라지는데 과거 총장들의 교과서적인 취임사를 그대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 총장은 취임사 속 이례적인 약속을 그대로 이행한 총장으로 기억될까. 전 정권의 비리나 정치권 수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마침 한비자는 가족이나 측근 등 권력과 가까운 ‘내부의 적’에게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뜻의 비내(備內)를 강조했다. 새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이 없어져 대통령 주변 비리에 대한 대응이 늦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검찰 수사 지휘라인이 대통령과 가까워 관련 수사가 무딜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중립 없는 검찰은 생각할 수 없다”던 이 총장의 최우선 과제는 민정수석실의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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