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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남프랑스의 술,압생트와 파스티스[정기범의 본 아페티]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입력 2022-08-18 03:00업데이트 2022-08-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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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 한여름에 갈 때면 잊지 않고 마시는 알코올이 있다. ‘파스티스(pastis·사진)’라는 독특한 술이다. 이 술을 처음 접한 것은 20여 년 전 우리네 한려수도에 비견되는 절경을 자랑하는 ‘칼랑크’(기암절벽에 둘러싸인 좁고 긴 바다의 만)를 보려 페리에 오르기 전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들른 허술한 부둣가 카페에서였다.

웃통을 벗어 던진 아저씨들이 참새처럼 한 줄로 앉은 모습이 흥미로워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다음 웨이터에게 저들이 마시는 음료를 달라고 했더니 파스티스가 나왔다. 커다란 글라스에 조금 담겨 나온 파스티스 위에 물과 얼음을 더하니 투명한 액체가 금세 우윳빛으로 변한다. 향신료 아니스와 복합적인 허브가 주는 묘한 청량감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배 속까지 시원해지는 맛이었다.

위장 장애와 관련해 의학적인 목적으로 스위스에서 발명된 파스티스의 형님뻘인 압생트는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남부로 전해졌다. 이 술은 아를(Arles)에 정착했던 화가인 고흐가 고독과 불면의 밤을 떨쳐내기 위해 자주 마신 술로 유명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에 있는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이라는 그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70도가 넘는 독주로 적은 양만 마셔도 금세 취할 수 있었기에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던 술이 압생트다. 이 술은 프랑스에 소개되자마자 부르고뉴나 보르도 와인의 인기를 앞서게 되었고, 이를 시기한 생산 업자들이 압생트를 마시면 마약과 같은 환각을 유발하는 한편 살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방을 쏟아냈다. 그 결과 1915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한번 맛본 사람들의 꾸준한 수요가 있어 이를 몰래 만들어 파는 밀주가 성행했다는 풍문이 전해진다. 피카소 박물관이 있는 남프랑스의 앙티브에 가면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압생트 바를 경험할 수 있다.

쑥을 비롯해 다양한 허브를 넣어 만드는 압생트와 달리 파스티스는 쌍떡잎식물 미나릿과 한해살이풀인 아니스와 해독 작용에 좋아 약재로도 많이 사용되는 감초에 각종 허브를 첨가하여 만든다. 파스티스가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것은 1932년에 마르세유의 유명 아니스 판매상인 폴 리카르가 비밀의 레시피로 만든 파스티스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의 일이다. 그는 압생트보다 마시기 쉽게 하기 위해 쑥을 빼는 대신 알코올 도수를 45%도로 낮추면서 대중화에 성공했다.

따가운 햇살이 연중 300일 이상 내리쬐는 남프랑스의 무더위에 맞서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파스티스와 압생트만 한 것이 없다. 특히 저녁 식사 전에 카페에 앉아 파스티스를 주문하면 현지인처럼 여유로운 일상에 젖어들 수 있다. 인생에 타이밍이 중요하듯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데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어도 프랑스 남부에서는 말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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