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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이진영]‘조선의 짠타크’ 김명시

입력 2022-08-16 03:00업데이트 2022-08-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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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무장투쟁사엔 여성의 자리도 있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만주에서 암살단원으로 활약한 남자현, 장제스가 ‘중국 장병 1000명보다 낫다’고 극찬한 여성 광복군 1호 신정숙 지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항일 무장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조선의 짠타크(잔다르크)’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이 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다. 1925년 배화여고 중퇴 후 고려공산청년회 유학생으로 선발돼 러시아 유학을 떠났다.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뛰어든 건 20세부터다. 중국 상하이에 파견돼 일본 영사관 경찰서 기차역 공격을 주도했다. 1932년 국내로 잠입해 활동하다 조봉암 등과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 주모자로 붙잡혀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엔 중국으로 망명해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여성부대를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한 손에는 총, 다른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싸우는 그를 사람들은 ‘백마 탄 여장군’이라고 불렀다.

▷광복 후 그는 개선장군이 돼 돌아왔다. 1945년 12월 23일자 동아일보는 여장군의 귀국 소식을 1면에 전하고 있다. “부하 2000명을 가지고 항일전에 활동하여 무훈을 세운 우리 조선의 ‘짠타크’ 여장군 김명시 여사.” 독립신보는 기획 ‘여류 혁명가를 찾아서’에서 김 장군을 이렇게 묘사했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 야무지고 끝을 매섭게 맺는 말씨, 항시 무엇을 주시하는 눈매, 온몸이 혁명에 젖었고 혁명 그것인 듯이 대담해 보였다.”

▷하지만 좌우 대립이 극렬했던 해방 정국에서 그는 신탁통치 반대 활동을 하다 체포돼 부평경찰서 유치장에서 입고 있던 치마를 뜯어 혁명가의 삶을 제 손으로 마감했다. 향년 42세였다. 그의 부고 기사에는 ‘북로당 정치위원 김명시’로 나온다. 한 시민단체가 2019년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두 차례 했지만 ‘북로당 정치위원’ 이력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북로당에 ‘정치위원’ 직책이 없고, 고인이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인정돼 올해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사후 73년 만이다.

▷잊혀진 여성 항일 운동가를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관순 열사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서 옥고를 치른 6인의 생애가 영화로 제작됐고, 여성 운동가 200명의 삶을 다룬 책도 나왔다.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1만7285명 가운데 여성은 3.28%. 서대문형무소 수형 기록에 나오는 4837명 가운데 여성이 180명(3.72%)임을 감안하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여성들을 발굴하는 정부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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