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중해’와 가상현실[메타버스 시대 읽기/김종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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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중해’의 한 장면. 사진 출처 IMDb 홈페이지
영화 ‘지중해’의 한 장면. 사진 출처 IMDb 홈페이지
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 큐레이터
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 큐레이터
전쟁과 감염병,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 소식이 날씨 소식만큼이나 잦은 시대다. 고달프고 불안한 날들을 지내다보면 어디 멀리 천국 같은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럴 때 찾아보는 영화가 ‘지중해’다. 199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 작품에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가장 치열하던 1941년, 9명의 이탈리아 군인이 그리스의 외딴섬을 점령하기 위해 파병된다. 오합지졸인 이들은 무전기도 망가지고 배도 파손되면서 어쩔 수 없이 섬에 갇혀 지내게 된다.

전화위복이랄까. 낙원 같은 섬에 이들은 차츰 동화돼 간다. 섬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사랑을 나누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간다. 이들에게 전쟁이라는 세상사는 마치 가상현실의 일인 것처럼 멀어진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전해진 종전 소식은, 따라서 낭보(朗報)가 아니다. ‘천국’에 스며든 군인들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비보(悲報)일 뿐이다.

“도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는 감독의 헌사가 붙은 이 작품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시대에 유토피아를 꿈꾼 작품이다. 다시 보니 ‘지중해’의 공간이야말로 메타버스를 빼닮았다.

메타버스는 디지털로 구현된 실시간 가상 세계다. 메타버스의 핵심은, ‘지중해’의 군인들이 외딴섬과 동화되듯, 바깥세상이 아닌 ‘그 세계’에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지리적 구분에 제한될 필요가 없다. 취향과 신념에 따라 공동체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각자의 수많은 ‘지중해 외딴섬’에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메타버스는 과연 그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등장할 때 들끓던 설렘과 열광은 벌써 차갑게 식고 있다. 그저 재미없는 게임 공간 정도로 환멸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원인이 뭘까. 가능성 부족보다 콘텐츠 부족이 문제다. 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한 ‘세계관 구축’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매력적인 세계 안에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곳이 아니라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지중해’에서 배울 일이다. 영화의 주제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그 핵심은 ‘인류의 삶이 탐욕과 증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이다. 우크라이나의 총성이 아직 멎지 않고 있다. 물욕과 배신의 인류 역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단순한 도피나 쾌락을 넘어 더 나은 세상, 그 자체를 꿈꾸던 인류의 아름다운 상상력에 다시 주목할 때다. 메타버스를 만들 때 우리가 투영할 핵심 가치가 바로 이것이다.



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 큐레이터


#메타버스 시대 읽기#지중해#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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