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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박용]연금개혁, 연금 밖에도 길이 있다

입력 2022-08-10 03:00업데이트 2022-08-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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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 실패 위험 커
노후소득 보완 ‘연금 밖 대책’도 준비해야
박용 부국장
한국과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에 대해 몇 해 전 만난 중국인 교수는 흥미로운 얘길 꺼냈다. 두 나라에서 각각 6·25전쟁,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구체제와 기득권 계층이 해체돼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이 속도를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정치·경제 체제가 다른 두 나라의 고속 성장을 ‘기득권 부재’ 관점에서 해석한 게 독특했다.

그의 진단대로라면 지금은 거꾸로다. 두 나라 모두 고속 성장의 과실을 축적한 계층이 등장했다. 한국에선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대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령대별 순자산액은 베이비붐 세대가 포진한 50대(4억987만 원), 60대 이상(3억7359만 원) 순으로 많다. 여유 자산을 축적한 계층이 두툼해지면 사회는 안정되지만 과거와 같은 역동성은 사라진다. 동시에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 등 새로운 위험이 커진다.

베이비부머의 퇴장도 당면한 위험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에 베이비부머(1955년부터 1963년 출생) 723만 명의 은퇴가 마무리된다. 이들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국민연금 급여지출액은 올해 약 34조 원에서 4년 뒤엔 약 53조 원으로 불어난다. 4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9%)과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노후 연금 수령액 비율) 40%를 유지한다면 국민연금이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엔 적립기금도 바닥난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 노동 개혁과 함께 “국민이 우리 정부에 명령한 사항”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절박하다.

연금 재정만 생각한다면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아야 하는데,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은 실패 위험이 크다. 더 내고 더 받는다면 모를까 덜 받는다는 데 기꺼이 낼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2019년 기준)은 공무원연금의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덜 받아야 한다면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불가피하게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겠다면 국민연금의 보장성 약화를 보완할 대안부터 마련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들의 축적된 자산을 활용하는 공공신탁을 보완책으로 제시한다. 미국 싱가포르 등에서 활성화된 신탁은 위탁자가 재산을 수탁기관에 맡기고 독립적으로 관리하게 해 위탁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최근 주택연금에 신탁 방식이 도입됐다. 이계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령자복지신탁과 같은 공공신탁을 통해 은퇴자들이 노후 안전 자산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면 기초연금 등에 들어가는 국가 재정 부담을 덜고 연금개혁을 추진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탁을 이용하면 고령자가 치매에 걸려도 당초 설계한 대로 재산과 노후 생활비가 관리돼 급증하는 상속 분쟁도 피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간 인기 없는 연금개혁을 미루고 세금으로 나눠주는 기초연금을 늘리는 데 열중했다. 연금 재정은 나아지지 않고 국가 재정만 축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 악순환을 끊고 국민의 명령을 완수하려면 보험료율, 지급률 등의 모수개혁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2층 연금체계’ 위에 사적연금(개인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 등)과 공공신탁 등을 올려놓고 노후소득 보전 관점에서 연금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큰소리만 치고 손대지 못 한 연금개혁의 구름판을 찾을 수 있다면 연금 밖 대책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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