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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기묘한 인종의 기묘한 이야기

입력 2022-06-30 03:00업데이트 2022-06-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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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시. 현대무용과 독특한 악곡을 결합한 그는 20세기의 기묘한 팝 아이콘이다. 케이트 부시 홈페이지
임희윤 기자
이것은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다. 4개월만 지나도 골동품 취급받는 ‘광속’ 유행의 시대에 40∼50년 묵은 노래들이 스크린을 타고 귀환한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 4, 영국 채널4 ‘잇츠 어 신’(국내 방영 ‘왓챠’), 영화 ‘탑건: 매버릭’…. 이 작품들이 자극한 기묘한 향수가 무려 두 세기에 걸친 광활한 세월을 가로질렀다. 4차원 입구 같은 초월적 청각 교차로를 생성해냈다. 좋은 음악은 죽지 않는다. 보석이나 화석처럼 조용히 묻혀 기약 없는 발굴을 기다릴 뿐이다.

#1. 지난달 넷플릭스가 공개한 공상과학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4가 촉발한 대(大)발굴의 주인공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시. 그의 1985년 노래 ‘Running Up That Hill(A Deal with God)’은 발표 당시엔 영국 싱글차트 3위에 머물렀던 노래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 삽입된 덕에 최근 차트 1위에, 그것도 2주 연속 올랐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도 3주 연속 10위권(최고 4위)에 올랐으니 미국에서도 돌풍이다.

#2. 44년 만에 차트 정상에 다시 선 가수. 그리고 정부의 비밀 실험 대상이 된 초능력 소녀. 실제 가수 케이트 부시와 극중 인물 ‘엘’(‘기묘한 이야기’ 주인공)은 슈퍼파워가 서로 닮았다. 부시는 11세에 작곡을 시작한 음악 신동. 천재적 재능이 16세 때 영국의 전설적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 데이비드 길모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길모어는 부시의 집을 찾았고 기재(奇才)를 직접 확인한 뒤 데뷔를 도왔다. 20세에 낸 곡 ‘Wuthering Heights’로 부시는 역사를 썼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직접 쓴 곡을 차트 1위에 올린 여가수가 된 것.

#3. 약관의 나이에 작사, 작곡, 연주, 편곡, 안무 제작을 총지휘한 부시의 재능과 담력은 ‘엘’의 염력만큼이나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부시는 무대에서 무선 마이크를 착용한 최초의 가수다. 부시를 보고 마돈나, 재닛 잭슨이 이 신기술을 차용했고 이후 모든 댄스 가수가 부시의 자장 안에 들어왔다. 멀리 케이팝도 부시에게 빚이 있는 셈. 부시는 직접 구성한 현대무용을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 무선 마이크를 도입했다. ‘Running Up That Hill’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독특한 예술관을 볼 수 있다.

#4. 영국에서는 지난해 청춘 드라마 ‘잇츠 어 신’이 20세기를 소환했다. 198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성소수자 청년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 영국 공영방송 BBC는 에이즈와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잇츠 어 신’의 각본에 부담을 느끼고 편성을 거부했다. 결국 채널4가 편성한 것이 ‘대박’으로 이어졌다.

음악 팬들은 드라마 제목만 들어도 눈이 빛난다. 영국 신스팝 듀오 펫 숍 보이스의 1987년 명곡 ‘It‘s a Sin’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이 곡 외에도 조이 디비전, 컬처 클럽, 이레이저, 퀸 등 1980년대 영국 음악의 진수가 먼지 털고 나와 영상을 수놓는다.

#5. 세월의 크레바스를 음악으로 메우는 불꽃놀이는 최근 화제인 ‘탑건: 매버릭’도 해내고 만다. 첫 공중전 훈련 장면을 장식한 영국 밴드 ‘더 후’의 ‘Won’t Get Fooled Again’은 특히나 상징적. F-18 전폭기의 엔진 파열음에 뒤지지 않는 폭발적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 사운드는 1962년생 교관 톰 크루즈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가 삼킨 건 대충 이런 독백 아니었을까.

‘일렉트로닉 팝? 힙합? 새파란 생도들아, 1971년산 로큰롤은 아나? 20세기 파일럿 맛 좀 볼 테냐고.’

#6. “(파일럿은 드론 앞에) 어차피 멸종될 운명이라네.”(케인 제독)

시간은 빛나는 왕좌에 앉아 개인에게 퇴장을 명한다. 유행의 첨단 미사일을 맞고 퇴격한 줄 알았던 노래의 생환 비행 역시 그래서 더 눈물겹다. 매버릭이 스스로를 교관도 대령도 아닌 그저 천생 파일럿으로 여기듯, 아티스트도 업종이 아니라 차라리 인종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술은 불멸한다며 생떼 쓰는 종족. 이들 예술가, 몽상가, 비행사의 황소고집은 세월의 제독에게 이런 말로 하극상을 저지른다.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매버릭)

다음과 같이 유치찬란하며 위풍당당한 선언까지 해버리고 만다.

“비행사는 제 직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란 인간 그 자체죠.”(매버릭)

누군가는 이해 못 할 이것은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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