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 [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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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인 40대 공무원 A 씨. ‘온몸이 부서지는 통증’에 시달리던 그는 평화롭게 생을 끝내기로 하고 스위스로 간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존엄사, 즉 의사조력사(physician-assisted suicide)를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A 씨는 2019년 국내 언론의 탐사보도에서 한국인 최초로 조력사한 인물로 소개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첫 법안이 나왔다.

▷조력사는 안락사와 함께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방법이다. 안락사는 타인에 의한 생명 중단을 말한다.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 죽게 하면 적극적 안락사,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소극적 안락사다. 2018년 연명의료법 시행 이후 소극적 안락사는 합법이 됐다. 조력사는 의사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치사량의 약을 먹거나 주사하는 일종의 자살행위다. 자살은 범죄가 아니지만 자살을 도운 의사는 자살방조죄로 처벌받는다. 15일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연명의료법 개정안)은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불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조력사를 허용한다.

▷우리에게 죽을 권리가 있을까. 조력존엄사 입법은 이에 답하는 과정이다. 조력사 반대론자들은 생명권은 기본적 인권으로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주장한다. 설사 죽을 권리를 인정해도 타인에게 도움을 요구할 권리까지 인정하긴 어렵다고 본다. 찬성론자들은 행복을 추구할 헌법상 권리에 따라 죽음의 방식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죽을 권리를 프라이버시권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스위스는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1942년부터 내외국인 모두에게 조력사를 허용하고 있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호주의 빅토리아주 등도 조력사가 가능하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저지, 워싱턴주 등 일부 주에서만 조력사를 허용한다. 조력사가 불법인 주에 사는 말기 환자가 허용되는 주에 가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안락사 또는 조력사법 찬성비율이 76.3%로 나왔다. 5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50%였다. 찬성 이유로는 ‘남은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죽음에 대한 권리여서’ ‘고통의 경감’을 꼽은 이가 많았다. 또 다른 존엄사인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한 사람이 4년간 20만 명이 넘고,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써둔 사람도 123만6000명이다. 존엄한 죽음 없이 품위 있는 삶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조력존엄사#조력사#안락사#죽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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