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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분노의 대물림[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2-06-15 03:00업데이트 2022-06-15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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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바우데베인 콜러 ‘카우보이’


이정향 영화감독
초등학생 꼬마 요요는 아빠랑 단둘이 네덜란드의 시골에 산다. 아빠는 항상 불만에 차서 아들에게 미소를 짓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요요는 이런 아빠의 관심을 받고자 애쓴다. 설거지와 빨래도 도맡아 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에게 수다도 떨지만 아빠는 시끄럽다며 화를 낸다. 요요는 아빠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게 자기 탓이라고 여겨 항상 아빠의 눈치만 본다. 어느 날 요요는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갈까마귀를 발견하고 아빠 몰래 자기 방에서 애지중지 키운다.

외로운, 너무나 외로운 요요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수였던 엄마가 지금도 미국 순회공연 중이라고 믿으며, 아빠와 나누지 못한 대화를 빈 전화기에 대고 조잘댄다. 그러던 요요가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을 어린 갈까마귀에게 쏟으며 비로소 사랑을 배운다. 주기만 해도 기쁜데 갈까마귀 덕분에 사랑받는 기쁨까지 알게 된다. 아빠가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는 걸 보고 자랐지만 요요는 아빠로 인해 쌓인 자신의 분노를 폭력으로 푸는 대신 갈까마귀에 대한 사랑으로 대체한다. 요요의 마음 깊은 곳에서 들끓던 화는 어느새 다정한 돌봄으로 승화된다. 영화 제목은 네덜란드어로 ‘갈까마귀 소년(Kauwboy)’이라는 뜻이다.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부산행 KTX를 탔다. 아침 기차는 노트북 작업을 하거나 모자란 잠을 청하는 승객들이 대부분이라 고요한데 이날은 달랐다. 마주 보는 좌석 여덟 개를 점한 아저씨들이 출발 전부터 회식을 하듯 흥겨운 판을 벌이고 있었다. 마스크도 벗은 채 쩌렁쩌렁하게 웃고 떠들었다. 역무원들이 여러 번 주의를 주고, 승객들이 호소를 해도 소용없었다. 전 열차가 만석이라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던 승객들은 그들이 동대구역에 내릴 때까지 두 시간 동안 꼬박 견뎌야 했지만 그들은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내렸다. 나는 그들이 어떤 아버지일까 궁금해졌다.

자식들도 똑같이 보고 배울까, 아님 저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반면교사로 삼을까? 같은 칸에 탄 승객 중에는 아주 힘든 하루를 시작해야 할 사람도, 설렘을 안고 기억에 남을 하루를 남기고픈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그들 때문에 더 힘든 하루가 되었고, 불쾌한 기억을 갖게 되었다. 공감 능력이 없는 부모는 자신의 감정만 중요하기에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른다. 자식은 이런 부모 때문에 누적된 분노를 무고한 타인에게 풀거나 자신의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 있다. 남들의 고통에 둔감한 그 여덟 명의 이기적인 행동은 이 사회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몰상식’들 가운데 하나겠지만 이런 행동들이 대물림되지는 말아야 한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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