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줌인]‘마블리’로 빚어낸 슈퍼히어로 유니버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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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2’에서 주인공인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오른쪽)가 범죄자를 취조하는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범죄도시2’에서 주인공인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오른쪽)가 범죄자를 취조하는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범죄도시2’는 경찰이 범인 잡는 내용이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범죄·형사물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물에 가깝다.

일차적으론 조폭 때려잡는 주인공 ‘괴물 형사’ 마석도가 초능력 수준의 초인적 완력으로 온갖 난관을 헤쳐나가기 때문인데, 그의 초능력은 무슨 범죄가 일어났는지 알아차리는 취조 단계에서부터 발휘된다. 한 대 패고 싶어서 못 참겠다는 그 찡그린 표정을 짓는 동안 주인공은 한 걸음씩 저절로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 점에서부터다. 이 영화는 취조와 신문에서부터 큰 난관에 부딪히며 비협조적인 인물에게 “그날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를 수없이 물어야 하는 일반 범죄형사물과는 다른 길을 간다. 범죄도시2에서 마석도는 취조실 ‘진실의 방’을 통과하는 순간 정말 진실을 빠르게 알아차리곤 나쁜 놈 잡는 히어로의 사명과 역할에 눈을 부릅뜬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처럼 이미 구축된 캐릭터성과 세계관에 기댄다는 점에 있어서도 슈퍼히어로물의 구조를 꼭 닮았다. 마블 슈퍼히어로물은 원작 만화에서 캐릭터를 따오는데, 범죄도시에선 주연배우 마동석의 캐릭터 이미지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극 초반 주인공 마석도가 자신의 주먹을 깨무는 인질범에게 “무슨 좀비냐”라고 묻는 장면은 ‘부산행’을 연상시키는 ‘이스터에그(Easter Eggs·창작자가 재미로 숨겨 놓는 메시지)’ 이상의 영화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주연배우가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구축해 놓은 이미지조차 자연스레 끌어오면서 범죄도시2 주인공 마석도는 주연배우 별명처럼 ‘마블리’ 그 자체가 된다. 괜히 팬들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두고 마동석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MCU’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주연배우의 인상과 이미지를 통해 불같은 성격과 특별한 완력, 뚝심을 연상할 수 있다면,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 캐릭터는 그걸로 끝이다. 영화는 이 주인공 캐릭터와 관련해선 삶의 배경이나 내면에 대해 더 구구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나쁜 놈 잡는 게 ‘업의 본질’이라면 그를 충실히 따르는 데엔 무슨 거창한 이유나 명분이 없다는 것. 그저 정의감과 악인을 쫓을 수 있는 능력, 뚝심만이 필요하다는 점을 직선적으로 웅변할 뿐, 주인공의 내면에서 동기를 찾지 않는다. 정의감에 차서 거칠고 불같은 히어로만을 비출 뿐이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과 맞물린다.

영화 초반부 마석도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쇄 납치살인을 저지르는 악인 강해상을 해외에서 잡으려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는 현지 정부 허락이나 영장 없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다는 지적을 받자 “이유가 어딨어,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라고 항변한다.

각자의 내면이나 사정 또는 입장과는 무관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서 보고 나쁘면 잡자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오늘날 카타르시스를 준다면 무엇 때문일까. 옳은 말을 하려고 해도 각자 사정이 있으신 웃어르신 눈치를 봐야 하고, 기껏 용기를 내더라도 이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세상이라서? 아니면 애초에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드물어서? 이전에 범죄조직을 소탕한 히어로에게도 실제 세상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불타는 정의감이라는 본질 이상의 정치력까지 요구하니까. 마석도에겐 요구하지 않을 배경과 눈치까지도 챙기라고 윽박지르니까.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서 범죄도시2가 더 슈퍼히어로물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도.

인상적인 대목 하나 더. 이 영화는 선역뿐만 아니라 천하의 몹쓸 놈 악역 강해상에게도 구구한 사연 내지는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이든 영화든 최근 몇 년간 문화예술계에선 악역에 서사를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끔찍하고도 명백한 악행에 대해서 그것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는 내용은 담지 말자는 논의(저널리즘에서도 유념하는 원칙이다)다. 수위가 높거나 실제 피해자가 있는 경우엔 이를 세세하게 묘사해선 안 된다는 점에선 대체적인 합의가 있다. 그러나 창작물에 한해 악행의 종류와 작품 내에서 악역의 기능까지도 종합해 살펴 따져봐야 한다거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유념하되, 일반론이나 원칙으로까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범죄도시2에서는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동기와 악인의 내면을 현실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좋은 참고점이 되는 듯하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고, 돈에 의해 움직이는 영화 속 악역 강해상처럼 대체로 악인의 동기나 내면은 대단할 게 없고 그저 비루하다. 실제로 고약한 악행들은 부여할 만한 서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명이 필요치 않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마블리#슈퍼히어로#마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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