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상준]尹 당선인, 2017년이 아닌 2022년의 청와대를 봐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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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정치부 차장
한상준 정치부 차장
2017년 5월 닻을 올린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그야말로 거침없었다. 대선 다음 날 취임한 문 대통령은 일자리위원회 구성이라는 1호 지시를 시작으로 업무지시를 쏟아냈다. 청와대는 훗날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난 검찰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을 계기로 검찰을 헤집었고, 청와대 비서동 사무실에서 전(前) 정권의 ‘캐비닛 문건’을 발견했다며 춘추관에서 공개했다. 첫 조각(組閣)을 두고 쏟아지는 ‘코드인사’ 비판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주도한 ‘이미지 정치’에 탄핵의 열기까지 더해지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곧 정권을 넘겨받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윤 당선인 측 인사들은 이런 2017년의 청와대를 보며 “우리도 저러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권력의 세기는 선거 승리 직후가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이 주목해야 하는 건 2017년의 청와대가 아닌 2022년 지금의 청와대다.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반 ‘K방역’을 수시로 언급했다. 하지만 확진자가 1000만 명을 넘어가는 지금, 청와대는 더 이상 ‘K방역’을 말하지 않는다. 방역은 국무총리의 몫이 됐다. 한 야권 인사는 “폼 나고 빛나는 일은 청와대의 공이고, 비판받고 민감한 일은 부처 책임으로 넘기는 일이 임기 마지막까지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취임 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수시로 브리핑을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지난해 5월이 마지막이었다. 협치와 통합 내각도 5년 임기 동안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이런 청와대의 모습을 5년 동안 지켜본 유권자들이 심판에 나섰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이 이끄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금의 청와대를 보며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반면교사는 곧 여당이 되는 국민의힘과 이른바 ‘윤핵관(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2017년 대선 승리 이후 기세가 오른 더불어민주당은 공개적으로 “20년 집권론”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결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1987년 개헌 이후 진보-보수 진영 사이에서 10년 주기로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그 기록을 민주당이 처음으로 깼다.

2017년 대선 직후인 5월 15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김경수 의원, 양정철 전 비서관과 저녁을 함께했다. 2017년 대선 승리의 1등 공신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지금 현실 정치 무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진보-보수 진영을 넘나들며 중책을 맡았던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대선 직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 측 인사들에게 “겸손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은 무한하지 않고, 유권자들이 5년 뒤 다시 평가에 나서기 때문이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문재인 정부#청와대#돈봉투 만찬#코드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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