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선희]새 정부, ‘신발 속 돌멩이’인 철 지난 유통 규제 개선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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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격리 기간 동안 새벽배송부터 배달음식, 퀵커머스를 그 어느 때보다 유용하게 이용했다. 격리 중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누리는 편리함은 더 각별했다. 현관 앞에 놓인 상자를 안으로 들일 때마다, 만약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면 재택치료 중인 국민이 180만 명에 달하는 이 시절이 얼마나 더 큰 고역이었을지 상상해보게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예측하기 어렵던 편의와 속도였다.

최근 유통시장은 시시각각 격변 중이다. 비대면 상황이 일상이 되며 온라인 소비가 보편화되면서 익일배송이나 당일배송을 넘어 30분 내 배송인 퀵커머스 시장도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도어대시, 고퍼프, 글로보 등 퀵커머스 분야 신생 기업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유통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소비시장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같은 기술의 옷을 입고 이렇게 ‘궁극의 편의’를 향해 질주하는 시대가 됐지만, 국내 유통산업은 철 지난 규제에 허덕이고 있다. 유통법은 1997년 유통산업의 효율적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개정이 잇따르면서 주로 규제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2012년 전통시장 주변에 대형마트 출점을 금지시키고 의무 휴업일을 지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시장이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생존 기로에 놓인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아직 요지부동이다.

이 법은 신규 출점 기준을 강화하는 방편으로도 쓰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론화시켰던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없는 이유’ 역시 이 법에 기반한다. 유통법 내에 근거를 둔 상생협의 절차가 미비하면 대다수 지역 주민이 원해도 지자체의 인허가를 받지 못한다. 인근 전통시장 중 한 곳만 반대해도 발목이 잡힌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뚜렷한 근거도 없다는 점이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을 때 주변 3km 내 상권 매출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한국유통학회 등의 연구는 오히려 정반대 결과를 보여준다.

각종 규제와 제한을 추가하는 유통법 개정안은 지금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마트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에도 대형마트처럼 영업시간, 영업일 규제를 확대 적용하는 개정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일각에선 이커머스 플랫폼이나 퀵커머스 규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성장 산업을 두고 규제부터 논의하는 건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 당선인은 규제 개혁에 대해 일관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경제단체 수장들과의 회동에서는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겠다”고 말했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데 천편일률적인 규제만 적용하면 결국 소비자의 편익과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게 된다. 유통 분야에서 역시 법의 취지에 맞는 정책적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코로나#유통시장#철 지난 유통 규제#신발 속 돌멩이#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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