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지역균형 볼모 된 국책은행 지방 이전

입력 2022-03-29 03:00업데이트 2022-03-29 04:34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임수 경제부 차장
3·9대선 이후 국책은행 직원들이 좌불안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는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공약이던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을 두고 지난주 “약속했으니 그대로 지키겠다. 지방에 대형 은행이 자리 잡는 게 지역 균형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산은 노조는 반대 시위에 들어갔고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서울에 본점을 둔 다른 금융공공기관도 이전 논의가 확산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은을 비롯한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다. 앞서 2020년 총선 때는 여당이,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땐 야당이 나섰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를 분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금융권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지방 도시의 젊은층 이탈과 고령화를 막겠다는 기대도 담겨 있다.

비슷한 명분하에 공공기관 153개가 혁신도시 10곳으로 이전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당초 목표한 계획인구를 달성한 곳은 2개뿐이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가족과 함께 동반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은 기혼자 기준 53.7%에 그친다. 균형발전을 위해 조성된 혁신도시가 여전히 주말이면 텅 빈 도시가 되고 있다.

부산 남구 문현동 일대는 2009년 국제금융혁신도시로 지정됐다. 현재 이곳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엔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 금융기관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산은이 부산으로 간다면 BIFC가 유력하다. 하지만 국제금융센터 이름이 무색하게 외국계는 물론이고 국내 민간 금융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부산의 금융 위상은 금융기관 이전이 마무리된 2015년보다 떨어졌다. 세계 126개 도시의 금융 경쟁력을 평가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부산은 2015년 3월 24위에서 올해 3월 30위로 하락했다. 그나마 70위까지 추락했다가 만회한 결과다.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 상당수가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하지 않고 서울에 남겨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산업은 인적, 물적 인프라를 한곳에 모으는 집적 효과가 중요하다. 세계 각국이 금융기관을 한데 모아 금융허브 육성에 매달리는 이유다. 국책은행이 지원하고 거래하는 기업을 비롯해 외국계 투자자, 금융사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다. 각종 현안을 조율해야 하는 금융당국과 국회도 서울에 있다.

대형 국책은행 하나 옮겨간다고 금융 비즈니스 생태계가 조성되고 지역경제에 돈이 도는 일이 일어나긴 쉽지 않다. 국민 노후자금 935조 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6년 전북 전주로 이전했지만 금융사 1곳도 따라가지 않은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운용 인력 100여 명이 줄퇴사하고 해외 큰손들이 국민연금을 패싱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

글로벌 금융허브들과 경쟁하려면 관련 인프라를 한곳에 집중해도 힘겨운 판에 정부는 되레 분산하기에 바쁘다. 18년 전 수립한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 아직도 계획에 그치는 이유다. “나눠 먹기식 지방 이전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국책은행 직원들의 주장이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