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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불멸의 인간 정신에 바치는 헌사, ‘거장과 마르가리타’[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2-02-25 03:00업데이트 2022-02-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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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가 1921년부터 1924년까지 거주했던 볼샤야사도바야 10번지 건물에 조성된 기념관 입구.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등장하는 악마의 수행원들 동상이 세워져 있다(왼쪽 사진). 기념관 내부에는 불가코프의 생애 및 작품 관련 물품과 삽화 포스터 등이 전시돼 있다. 석영중 교수 제공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소련 시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미하일 불가코프(1891∼1940)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신학대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세계대전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한 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환상과 사실을 뒤섞어 인간의 정신을 깊이 탐색하는 그의 소설과 희곡은 유물론을 내세우는 소비에트 정부와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작가 숭배 현상까지 나타나

불가코프는 곧 반혁명 작가로 낙인찍혔고 가택 수색, 원고 압수가 뒤따랐다. 그는 정권의 위협과 극도의 생활고 속에서 생애 마지막 10년을 장편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집필에 바치고 세상을 하직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1966년 잡지 ‘모스크바’에 일정 대목이 삭제된 채 연재되면서 소비에트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거의 ‘컬트’에 가까운 불가코프 숭배 현상이 일어났다. 빅토르 펠레빈의 표현에 의하면 당시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오래된 사물의 질서로부터 “즉각 해방되었다”. 열혈 독자들은 삭제된 대목을 지하 출판을 통해 찾아 타이핑한 뒤 책에 붙여 돌려가며 읽었다. 인류를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으로 구분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불가코프가 잠시 거주했던 아파트는 팬들의 순례지가 됐다. 검열 부분을 복원한 완성본이 1967년 파리에서 출간된 이후 소설은 20세기 최고의 문학이라 평가받으면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930년대 모스크바. 어느 날 뜬금없이 흑마술 교수로 변장한 악마 볼란트가 거대한 검은 고양이를 비롯한 깡패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도심에 나타난다. 악마 일당은 신생 소비에트 사회의 이곳저곳을 들춰내며 방화, 살인, 사기 등 온갖 행패를 부린다. 그들의 행패를 통해 소비에트 사회의 신흥 관료와 엘리트들의 탐욕과 위선과 천박함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악을 이용해서 악을 혼내준다는 설정이다.

악마가 주도하는 사회 풍자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로맨스와 뒤얽히며 풍자 소설의 한계를 넘어선다. ‘거장’이라는 별명으로만 알려진 남자는 아르바트 거리에 셋집을 얻어 칩거하면서 일생일대의 역작인 그리스도와 빌라도에 관한 소설의 집필에 몰두한다. 그는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저명한 과학자의 아름다운 부인 마르가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거장이 소설을 완성하자 그에게는 온갖 비방과 혹평과 저주가 쏟아진다. 국가의 창작 이념을 거스른다는 이유에서다. 거장은 공포에 질려 원고를 불태우고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마르가리타는 거장의 행방조차 몰라 불탄 원고의 부스러기만을 간직한 채 시들어간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일단 재미있다. 줄거리의 진행 속도도 빠르고 적절하게 배합된 환상과 그로테스크, 로맨스와 풍자와 유머가 독자를 매혹한다. 게다가 소설 곳곳에 박혀 있는 촌철살인 구절들은 현대의 경구로 굳어져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이다.

‘불타지 않는 원고’는 사실 저자의 집필 의도 전체를 요약해주는 핵심 개념이다. 볼란트는 성대한 연회를 주최하면서 안주인으로 마르가리타를 선택한다. 마르가리타가 안주인 역을 만족스럽게 해내자 악마는 그 보상으로 정신병원에서 거장을 빼내 와 마르가리타와 만나게 해준다. 악마가 거장에게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하자 거장은 당혹스러워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소설을 페치카에 태워버렸습니다.” 악마가 실소한다. “실례지만 그 말은 못 믿겠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원고는 불타지 않소. 베헤모트, 소설을 이리 가져와.” 그러자 기적처럼 온전히 보존된 거장의 원고가 즉시 눈앞에 나타난다.

미하일 불가코프 기념관 벽면을 채운 방문객들의 그라피티. 가운데 불가코프의 얼굴이 보인다. 석영중 교수 제공
거장의 스토리는 불가코프의 전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는 거장처럼 정권의 박해 속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초고를 1930년에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에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해 두 번째 초고를 1936년에 완성했다. 그는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수정을 거듭했다. 생애 마지막 몇 달간은 시력을 상실해 부인에게 구두로 교정 사항을 알려주며 원고를 다듬었다. 그가 불태운 원고는 사라지기는커녕 고통의 시간을 거치며 숙성하여 더 풍요로운 새 원고로 완성되었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는 고통의 극한에서 작가를 지탱해 준 모토이자 그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다. 그것은 더 나아가 문학의 불멸에 대한 헌사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불타지 않는 원고’의 가장 깊은 의미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슬그머니 드러난다. 볼란트의 배려로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함께 날아간다. 지상을 떠나기 전에 마르가리타는 거장의 원고를 챙기려고 한다. “어디로 가든 소설만은 가져가야 해요!” 그러자 거장이 말린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다 외우고 있소.”

삶이란 불멸의 기록


원고를 불멸로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악마의 마술이 아니라 거장 자신의 기억이라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의 흔적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것은 쌓아두고 곱씹고 되씹는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인생에 남겨 온 발자국을 직시하고 복기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용기를 낸다는 뜻이고 소명감으로써 내 삶을 대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날마다 삶의 백지에 작은 글씨 하나씩을 새기며 살아간다. 보통 사람이 거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인 우리가 고통을 감수하며, 넘어져 가며, 실수를 통해 배워 가며 전 존재로서 삶에 투신할 때 우리의 하루는 위대한 기록이 된다. 우리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불타지 않는 원고가 된다. 불가코프는 결국 문학 작품의 불멸을 넘어 헌신, 용기, 기억으로 추동되는 인간 정신의 불멸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소설은 그가 우리 모두의 위대한 흔적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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