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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공기업 채용 반 토막, ‘일자리 정부’의 역설[광화문에서/정임수]

입력 2022-02-15 03:00업데이트 2022-02-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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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사흘 뒤 헬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깜짝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즉각 “공사 소속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보고했다. 2020년 들어 정부 주도로 이를 밀어붙이자 기존 정규직 직원과 청년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졌다.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엔 “채용 문이 더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글이 쏟아졌다. 역차별을 성토한 청년들의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2019년 149명이던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지난해 70명으로 반 토막 났다.

인천공항공사만이 아니다. 주요 공기업 35곳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최근 2년 새 47% 급감했다. 2019년엔 1만1238명을 뽑았는데 2020년 7631명, 지난해 5917명으로 뚝뚝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영향도 크지만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사실상 채용을 중단한 한국마사회, 강원랜드를 제외하곤 비정규직 제로에 앞장서온 공기업에서 채용 부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4616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철도공사의 신규 채용은 2019년 3964명에서 지난해 1426명으로 64%나 줄었다. 비정규직 566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전력의 채용도 41% 감소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무더기로, 무리하게 전환하다 보니 조직이 비대해지고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신규 인력을 뽑을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공기업 일자리만 사라진 게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국내 제조업 일자리는 최근 5년 새 18만 명가량 줄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전체 임직원 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같은 기간 미국(49만 명), 일본(34만 명), 독일(25만 명) 등에서 제조업 취업자가 늘어난 것과 딴판이다. 자동차·조선업 구조조정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문 정부가 밀어붙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일률적인 주52시간제, 기업규제 3법 등으로 기업들의 손발이 묶인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이것이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걸어 놓고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 정부의 현주소다. 이런데도 대통령일자리수석은 최근 “(코로나19 이전 고용을 100으로 봤을 때) 지금 102%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천문학적 일자리 예산으로 ‘관제 알바’를 늘려 고용통계는 분칠했을지 몰라도 사상 최대로 급증한 ‘구직단념자’는 막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포기하고 실업자 집계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지난해 63만 명에 육박한다.

고용 참사의 민낯은 정부 주도 일자리 정책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대선 후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유력 대선 주자들은 구체적 로드맵도 없이 ‘300만 개 일자리 창출’,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같은 지르기식 공약을 내놓고 있다. 기업 족쇄를 푸는 규제 혁파와 고용 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은 나 몰라라 하고 노동계 표 계산에만 매달린다면 제대로 된 일자리는 요원하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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