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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혼과 지지 철회[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2-02-09 03:00업데이트 2022-02-09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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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니콜 홀러프세너의 ‘이너프 세드’
이정향 영화감독
성격 차이로 10년 전 이혼한 40대 에바는 파티에서 만난 이혼남 알버트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는다. 그의 비만한 몸이 싫었지만 막상 얘기를 나눠 보니 재미있고 잘 통해서 첫 데이트 이후부턴 그의 몸집이 거슬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친해진 마리안이 그의 전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남편을 극도로 증오하는 마리안의 곁에서 에바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꾸 알버트의 단점을 캐묻는다. 재혼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그러다 보니 듬직하고 재미있고 자상했던 알버트가 어느새 뚱뚱하고 지저분하고 게으르게만 여겨져 잔소리를 하게 되고, 결국엔 알버트로부터 “왜 내 전처와 함께 있는 기분이죠?”라는 말까지 듣는다.

젊었을 때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에게, 나이가 들면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즉, 새로움으로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랑을 좇다가 어느덧 심박수를 가라앉히는 편안함에 점수를 준다. 20대의 느긋한 알버트와 완벽주의자 마리안은 그래서 끌렸을 거다. 40대의 느긋한 알버트와 느긋한 에바도 그래서 끌렸을 거다. 예민한 마리안은 털털한 에바가 자신과 달리 여유로운 성격이라 친구 삼았을 거다. 끔찍한 배우자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전남편이 재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 걸 보고 에바는 깨닫는다. 마리안의 전남편인 알버트도 나와는 잘 살 수 있을 텐데 왜 여태 다른 여자의 가치관으로 알버트를 판단하고 내 미래를 예단했을까.

우리는 배우자를 고를 때 심사숙고한다. 첫 만남부터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남을 헐뜯는 걸 즐기고, 거짓말도 쉽게 하고, 사과 대신 변명에 능하다면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해도 결혼 상대로는 부적격인 걸 누구나 안다. 대선이 한 달 뒤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헐거운 잣대로 정치인을 지지하면서도 막상 지지 철회는 이혼보다 더 두려워하고 창피해한다. 결정적 흠을 알게 돼도 애써 외면하고 지지를 합리화할 핑계를 찾는다.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는 데엔 용기와 지성이 따른다. 어떻게 선거가 결혼만큼 중하냐고, 내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혼자에게 이상형을 물어보면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똑똑한 여자가 좋아, 귀여운 남자가 좋아, 키 큰 여자가 좋아, 재밌는 남자가 좋아, 처럼. 나? 내 답은 한결같다. 잘생긴 남자가…. ‘알았어, 그만해’라는 뜻인 제목 ‘이너프 세드’는 감독이 영화 속 에바에게 전하는 조언처럼 들린다. 전 부인을 통한 염탐질은 이제 그만하고 직접 부딪치고 겪어보라는. 퉁명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위로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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