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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웃픈 아이러니[이준식의 한시 한 수]〈144〉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1-21 03:00업데이트 2022-01-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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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 하나씩 독차지한 여우와 쥐, 대로를 누비는 호랑이와 독사.

하늘이야 내려다보든 말든, 그저 땅 위를 깡그리 휩쓸고 있다.

오리처럼 살찐 관리는 볼록한 조롱박 형상, 물고기처럼 문드러진 백성은 죽이 될 지경.

마구잡이로 거둬간들 누가 감히 따지랴. 부질없이 청백리 찬가(讚歌)만 떠올려 본다.

(狐鼠擅一窟, 虎蛇行九逵. 不論天有眼, 但管地無皮. 吏鶩肥如瓠, 民魚爛欲미. 交徵誰敢問, 空想素絲詩.)

―‘여우와 쥐(호서·狐鼠)’ 홍자기(洪咨夔·1176∼1236)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백성의 삶을 목도한 시인의 분노. 권력자에게 빌붙어 재물을 탈취해가는 여우와 쥐도 있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대로를 활보하는 호랑이와 독사도 있다. 말단 관리도, 고관대작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친다. 백성은 어죽처럼 문드러질 처지건만 반항할 엄두조차 못 낸다. ‘부질없는 상상’임을 자인하면서도 시인은 그 옛날의 청백리 찬가를 되뇌어 본다. 영웅의 재등장에 거는 간절한 기대 때문이리라.

시는 문인시 특유의 완곡함 대신 과격하리만치 노골적이고 독한 비유로 일관한다. 현직 관리이면서도 멸망 직전 남송 조정의 부패를 거세게 비판했던 시인, 그 바람에 재상에서 말단직을 오가는 극단적 부침을 겪었지만 강직한 기개만은 꺾이지 않았다. ‘호서(狐鼠·여우와 쥐)’는 ‘성호사서(城狐社鼠)’를 줄인 말. ‘성곽에 굴을 뚫고 사는 여우와 사당에 서식하는 쥐’다. 권력자에게 빌붙은 소인배를 비유한 성어다. 저들은 근거지가 성곽과 사당이라 제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 중요한 장소를 섣불리 손댔다가는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오명을 덮어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역사 속 ‘웃픈’ 아이러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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