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중심 중대재해법으론 안전 확보 어렵다[동아시론/정진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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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시행 앞두고 혼란 가중
엄벌만 강조해선 안전 효과 한계
실효성 있는 正法 마련해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의지와 비용이 아니라 불명확성과 비현실성이 리스크이다.”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산업현장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반영하는 말이다. 전문가조차도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예방조치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은 알면 알수록 ‘멘붕’에 빠진다고들 한다. 의무 주체부터가 오리무중이다. 정부가 내놓은 해설서는 핵심 쟁점에 대해선 피해가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례별로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예측 가능성이 없다 보니 예방은 자취를 감추고 중대재해 발생은 곧 처벌이라는 낡은 결과책임의 유물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원청의 의무인지 하청의 의무인지, 지배자, 운영자, 관리자가 다를 경우 누가 의무 주체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것은 예방과 피의자 인권에는 관심 없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인 여하를 따지지 않고 처벌하겠다는 면피용의 보여주기 행정과 다름없다. 최근 정부가 한국전력 하청작업자의 감전 사망에 대해 사장이 처벌될 수 있다고 겁박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법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강권적인 정부는 툭하면 가혹한 형벌을 만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엄벌에 무감각해져 그 효과가 없어진다고 갈파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법을 만들어 벌을 받는다는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바르지 않은 법이 제정되고 자의적으로 집행되면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법을 우습게 아는 풍조가 확대될 수도 있다.

법 준수의 전제조건인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엄벌로 기업을 겁박하기만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기업이 안전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에는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내용이 많은 데다 실질적으로 구축하려면 많은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다짜고짜 몰아붙이니, 기업은 처벌 회피를 위해 형식적으로 구축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이다. 처벌의 첫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법 시행일부터 설 연휴까지 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기업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열을 올리다 보니, 기업은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할 여유가 없다면서 산업안전보건법 등 예방법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흡사 학습 역량이 부족한 자녀에게 여건은 조성해 주지 않으면서 당장 좋은 성적을 못 내면 몽둥이찜질을 하겠다고 겁주는 부모와 매한가지이다.

죄질이나 비난 가능성으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강하게 처벌할 규범적 근거가 없거나 오히려 약한데도 처벌 수준만 크게 올려놓은 위헌성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흠이다. 이 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간에 의무 주체가 충돌되는 부분이 많은 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인 의문을 낳고 있다. 법에 정당성과 신뢰성이 없으면 준법도 법치도 헛된 구호로 전락한다.

법 시행으로 단기적으론 중대재해가 줄어들 수도 있다. 대기업만이라도 ‘군기’ 잡는 효과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스템과 인프라 개선 없이 처벌 중심의 접근만으론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얼마 안 가 ‘요요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윤창호법 시행 직후인 2019년엔 음주운전 사고가 줄었지만 작년에 다시 늘어난 것도 그렇고, 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로 중범죄가 정권 초기에 줄어들었다가 말기에 원래 수준으로 늘어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엄벌 만능주의의 접근으론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고, 설령 범죄 감소 효과가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비용과 권리 침해를 생각하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준비에 부산한 모습을 보고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서류작업 중심의 보여주기에 매몰되고 지속적이고 착실한 대책은 실종되고 있는 부작용을 직시해야 한다. 기업의 안전 역량이 되레 후퇴할 수 있다는 현장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중소기업은 이 법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구호만 요란한 엉성한 법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법(正法)이 답이다. 난맥상을 초래한 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처벌#중대재해법#안전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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