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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시간이 느리게 가는 주말 중국집[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1-11-05 03:00업데이트 2021-11-0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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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교수님 주말에 뭐 하세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리학자는 특별한 주말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일까. 주말엔 늦잠을 자려고 하지만 이상하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된다. 몸도 가볍고. 그 이유가 뭘까. 일어나면 커피를 내려 천천히 마시고 일주일 치 신문을 꼼꼼히 본다.

그 다음 외출 준비를 한다. 동네 단골 중국집이 문을 열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중국집에 도착해 좋아하는 좌석에 앉는다. 이런 정적이 좋다. 재스민 티가 나온다. 휴일 아침에 마신 따듯한 재스민 티가 주중에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재스민 향 때문일까, 아니면 따뜻한 티의 온기 때문일까? 뒤이어 자차이(보통 짜사이로 불린다)와 함께 노란 무와 양파 춘장이 나온다. 곧 맥주가 도착한다. 단골의 특권이다. 말하지 않아도 순서대로 음식이 나온다. 난 그저 휴일 아침의 정적을 즐기면 된다.

자차이와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생각에 잠긴다. 주로 아쉬웠던 일이 많이 생각난다. 풀지 못한 문제도 뒤이어 찾아온다. 하지 못한 일. 해야 할 일. 주로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면 자차이에 맥주 한 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간짜장이 나오고 군만두가 나온다. 많은 양이지만 주말 아침을 위해 금요일 밤 살짝 적게 먹어뒀기 때문에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재스민 티 한 잔으로 입을 마무리하고 중국집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다. 낮잠을 자러. 주말에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로 느리게 지나가는 행복한 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의미다. 중력과 속도에 영향을 받는다.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속도가 빨라지면 시간은 느리게 가고, 중력이 강해지면 시간은 느리게 간다. 이런 시간 지연(time dilation)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1년 후,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블랙홀 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중력과 시간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블랙홀의 가장자리에 놓이게 되면 중력의 힘에 의해 시간이 느리게 간다. 블랙홀에서 그 어떤 것도 탈출할 수 없는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의 지평선’의 지름을 최초로 계산한 과학자가 바로 슈바르츠실트다. 1916년 슈바르츠실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망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만든 지 1년 만에 중력장 방정식을 풀다니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마치 블랙홀과 같은 중력의 힘이 영향을 받은 것처럼, 한없이 느리게 가는 시간을 느끼는 휴일 아침이 지나면 시간은 이상하게 빨리 지나간다. 누구에게나 같이 주어진 일상의 시간. 그래서 휴일 아침 중국집에서 보내는 나만의 느린 시간을 자주 찾게 된다. 따듯한 재스민 티 한 잔과 함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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