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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음식점총량제가 불 지핀 큰 정부 vs 작은 정부

입력 2021-11-02 03:00업데이트 2021-11-0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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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지난주부터 ‘음식점 총량제’를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첫 민생 행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의 전통시장을 찾아 “하도 식당을 열었다 망하고 해서 개미지옥 같다”며 “200만∼300만 원 받고 팔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택시처럼 음식점 개·폐업 때도 면허를 사고팔게 하면서 전체 음식점 수를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국민 밥벌이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 후보는 하루 만에 “국가정책으로 도입해서 공약화하고 시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면서도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당장 대선 공약에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필요하다면 추후 도입 가능한 옵션이라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이 후보의 지적처럼 국내 자영업자 비중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고 음식업을 비롯한 자영업 전반이 과당 경쟁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다. 무작정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도태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영업 과잉은 한국 경제의 그늘로 꼽히며 오래전부터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구직자나 노후 준비 없이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음식점 숫자만 통제하겠다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부의 허가 아래 안전하게 영업하는 환경에선 자영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거나 혁신할 기회마저 사라질 수 있다. 자영업 진입을 줄일 근본 해결책은 총량 규제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일임을 이 후보도 알고 있다.

이 후보는 그런데도 “선량한 국가에 의한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선의를 앞세운 정책들이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들을 우리는 수차례 봐왔다. 현 정부에서도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운 임대차 3법이 전세 난민을 쏟아냈고, 최저임금 1만 원을 앞세운 소득주도성장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없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음식점 총량제를 두고 야당 대선 주자들도 일제히 공세에 나섰다. “불필요한 간섭과 통제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경제를 망가뜨릴 뿐이다”(윤석열 전 검찰총장)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홍준표 의원) “정부의 역할은 막무가내로 규제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다”(원희룡 전 제주지사). 한 사안을 놓고 여당 후보는 “국가공동체를 책임지는 공직자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야당 측은 간섭과 억압이라고 본 것이다.

이 후보는 앞서 경기도지사 퇴임 때도 “50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나라의 대표 일꾼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이번 총량제 이슈뿐 아니라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도 ‘내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원하는가’, ‘내 삶을 간섭하지 않는 정부를 원하는가’는 대선 후보와 공약들을 가늠할 주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는지, 뜬구름 잡는 정책을 쏟아내는지 가려내는 건 이제 유권자의 몫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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