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강연[동아광장/박상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입력 2021-08-21 03:00수정 2021-08-21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비행기 고장으로 살아남은 가미카제 대원
특공대가 일부 영화처럼 미화되길 원치 않아
평생 전쟁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려
국민을 속인 軍 지도부·지도자 용서 못해
日 우경화 속 침략역사 반성하는 이들 적지 않아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2013년 5월 어느 날 와세다대 캠퍼스에 세워진 한 입간판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에나 다케히코라는 사람의 특별강연을 알리는 입간판이었는데, 이름 아래 ‘교우, 전 해군 가미카제 특별공격대’라고 적혀 있었다. 강연 제목은 ‘학도 출진과 특공’이고, 주최는 ‘와세다 대학사 사료센터’였다.

2011년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고는 있었지만 학문의 자유를 모토로 걸고 있는 대학에서 가미카제 대원의 강연이, 그것도 대학 공식 기관 주최로 열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오고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확인하려고 강연에 참석했다. 당시 주최자들이 어떤 의도로 그 강연을 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에나 씨를 초청해 준 것,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게 해준 것에 나는 지금도 감사히 생각한다.

전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점잖고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느렸지만 9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달력이 좋았다. 와세다대 학생이었던 그는 1943년, 스무 살 어린 나이에 학도군이 되었다. 해군에서 비행병으로 훈련받은 후 1945년 3월 특공대원에 임명되었고 4월에 출격 명령을 받았다. 그의 비행기는 엔진 고장으로 회항했고, 5월에 다시 출격했을 때도 엔진 문제로 구로시마라는 섬 인근 해안에 불시착했다.

그는 7월 말에야 구조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났다. 그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특공대원 중에는 기체 결함으로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온 이들이 간혹 있었다. 그중 에나 씨와 헤어지면서 “모처럼 살아난 목숨이야. 앞으로의 인생, 자신의 생명을 어쨌든 소중히 하자”라고 한 동료가 있었는데, 수년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쟁의 트라우마 혹은 죽은 전우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나 씨 역시 죽은 전우들에게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가미카제 특공대가 일부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미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주요기사
특공대원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고,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고, 그들의 유서와 일기에 그렇게 적고 있었지만, 출격 당일 웃는 얼굴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에나 씨가 기억하는 전우들은 빼앗긴 꿈을 아쉬워하고 죽음의 공포를 떨치지 못한 그냥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한 동료가 낮게 읊조리는 노래에 흠칫한 적이 있었는데, 전쟁 전에 인기 있었던 미국 영화의 주제가였다고 한다.

에나 씨는 부대로 복귀한 뒤에야 전세가 기운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몬 해군 지도부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단호한 어조에 2006년 NHK에서 절찬리에 방영됐던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역시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살아 돌아왔는데, 전사한 소대원의 누나가 동생의 마지막을 듣고자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누나를 만난 주인공은 동생을 지키지 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며 눈물을 쏟았다. 누나는 한없이 슬픈 얼굴로 “옳은 전쟁, 이기는 전쟁이라며 국민을 속인 자들을 쉽게 용서하면 죽은 동생이 너무나 가엾다”면서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8월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평화를 위해 힘쓰는 일본만을 강조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달리, 나루히토 일왕은 “깊은 반성의 위에 서서”라는 표현을 추도사에 넣었다.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에는 여전히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평화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년을 집권하고도 끝내 평화헌법을 건드리지 못한 이유다.

에나 씨는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대로 유골은 그의 전투기가 불시착했던 바다에 뿌려졌다. 평생 전쟁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했던 그는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도 침략당한 역사를 쉽게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우들을 다시 만났을까?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지도자들에게 속아 800kg의 폭탄을 싣고 비행기에 올라야만 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국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가미카제 특공대원#강연#미화#전쟁 트라우마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