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특허’만 양산하는 지식재산권 정책[동아광장/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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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지식전파 균형 요구되는 특허제도
국내 특허 다수, 인용되지 않는 ‘장롱 특허’
과도한 보호는 시장진입 막고 역동성 저해
보다 공정한 경쟁에 시급한 건 지식 전파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혁신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이끌 원동력으로 부각되며 ‘지식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여권 대선주자들이 ‘지식재산처’ 신설을 제안한 데 이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특히 중소기업의 특허 개발을 지원·보호하고 이들의 연구개발(R&D)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게 할 수단을 다방면으로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

이 같은 정책 기조에 깔린 문제의식도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1인당 특허 출원 건수가 세계 1위이고, R&D 역시 국내총생산(GDP) 비중으로는 세계 1위”라며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이나, 실제 R&D 성과가 산업 현장의 생산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낮다”고 지적했다. 간단히 말해,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는데 정작 돈 되는 결과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은 기술이나 디자인 또는 저작물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에 대해 국가가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제도인데, 부동산 같은 유형자산에 대한 재산권과는 달리 특허권이나 저작권은 그 효력이 특정 기간 동안만 존속된다. 한국 특허권은 출원일로부터 20년까지만 인정되고 저작권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다. 한 가지 특징은 지식재산권이 만료되는 순간 해당 기술이나 저작물 가치가 추락한다는 점이다. 아마존에서 ‘죄와 벌’을 전자책으로 살 때 가격은 고작 1달러다.

왜 이런 것일까? 부동산과 달리 지식이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수학 문제도 정답을 알고 나면 별게 아니듯 기술도 특허로 공개되는 순간 모방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지식의 전파’가 개인 혁신을 공동체 성장으로 연결하는 핵심 기제다. 그러나 혁신을 하는 발명가의 입장은 다르다. 남 좋은 기술 개발에 공 들일 유인은 작다. 바로 이 때문에 지식재산권이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지식의 공적 기능도 살리기 위해 그 권리를 특정 기간과 범위로 제한하는 것이다. 특허제도 ‘운영의 묘’는 혁신 인센티브와 지식의 전파 간 적절한 밸런싱에 있다.

지식재산처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 대선 후보는 “기술 유출 피해가 빈발해서 중소·벤처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뻗어 나가는 성장의 사다리가 부실하다”고 했다. 좋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지식재산권 때문에 중소기업이 손해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 인식 아래 정부와 여당은 지원과 보호 확대 일변도의 지식재산권 정책을 펴고 있다. 특허 침해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이미 시행 중이다. 선거를 앞두고 기술 담보 금융도 늘릴 태세다.

실상은 어떨까? 특허의 수준을 가늠하는 한 지표는 ‘피인용 횟수’다. 논문처럼 특허도 선행 특허를 인용하게 되는데 많이 인용되는 특허가 좋은 특허로 간주된다. 그런데 특허청에 등록되는 특허 중 절대다수가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는 소위 ‘장롱 특허’다. 게다가 피인용 수가 높은 ‘혁신적 특허’ 출원인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일색이다. 임팩트 없는 일회용 기술만 개발하고 있다면 그 기업의 발목을 잡는 원인은 기술 유출이 아니라 자체 역량 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지적대로 문제는 저조한 연구개발 ‘효율성’이다. 특허답지 않은 특허가 범람하고, 수상하게도 정부 연구개발 과제의 성공률은 100%에 육박한다. 이런 마당에 특허권을 강화하고 지원을 늘려서 어떻게 그 효율성을 올린단 말인가. 오히려 장롱 특허만 더 양산해 효율성이 악화되고 분쟁이 빈발해 변호사만 신나는 상황이 우려된다. 중소기업이 소송을 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 특허 요건과 심사 역량을 보강해 내실 있는 기술을 골라내는 시스템 구축부터 시작하는 게 합리적인 수순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혁신 장려도 필요하지만 대기업이 쌓은 노하우 확산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기업 특허를 중소기업 특허가 인용하는 경우는 눈 씻고 찾기 힘들다. 그만큼 혁신 생태계가 위아래로 단절돼 있다. 과도한 지식재산권 보호는 시장 진입을 막고 역동성을 저해한다. 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시급한 건 지식 전파가 아닐까? 놀고 있는 공공부문 특허를 중소기업에 무상 개방한다는데 장롱 특허 갖고 생색만 내는 꼴이다.

최적의 지식재산권 제도는 상충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동시에 고려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만 도출할 수 있다. 특허권은 해당 국가에서만 인정되기 때문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해외 특허제도도 함께 살펴야 한다. 지원과 보호를 강화하자는 식의 단순한 처방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식재산권 정책#장롱 특허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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