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정보, 편향된 시각 벗어나야 일본 상대한다[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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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갈등-마찰 늘지만 해결은 난망
이순신 승전 비결 왜군 과소평가 않은 것
대일정책 국내용 넘어 설득력 얻으려면
‘일본을 잘 모른다’는 사실부터 인정하자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신립은 조선 선조 때의 무장이다. 북방 여진족으로부터 육진을 지킨 공로로 평안도 병마절도사, 한성부 판윤 등 출셋길을 달렸다. 실록에는 아군이 열세인 와중에도 단기필마로 적진을 돌파하여 승기를 잡은 그의 무용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백전백승의 용장은 임금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정은 그를 삼도도순변사로 임명했다. 충주로 내려간 신립은 평야에 배수진을 쳤다. 협곡에 매복하고 있다가 왜군이 지나갈 때 기습하자는 조언이 있었지만 신립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적은 보병이고 우리는 기병이니 넓은 들판에서 철기(鐵騎)로 짓밟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립의 기병은 왜군의 조총 앞에 무력했다. 조정의 희망이던 신립의 군대는 전멸했고 신립은 강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신립이 조총의 존재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뛰어난 궁사였던 신립은 조총이 활보다 더 우수한 병기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조총은 활과 달리 장전에 시간이 든다. 조총 두세 발을 쏘는 동안 화살은 수십 대를 쏠 수 있다. 하지만 신립이 마주친 일본군은 조총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전술을 개발해 있었고, 갑옷을 꿰뚫는 조총의 살상력은 화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임진왜란에 앞서 을묘왜변을 겪은 조선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를 상설화하고 삼남 전체에 걸쳐 전면적인 방비 태세를 갖췄다. 전라도나 제주도 해안을 노략질했던 왜구는 그 규모가 수천에 지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에 동원된 왜군은 20만 명을 넘었다. 왜구는 수전에 능했지만 육지에서는 조선 정예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반면 임진왜란의 왜군은 전력과 전술에서 왜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예화된 군대였다.

조선 수군은 해상에서 왜구를 막지 못했다. 수군을 폐하고 육지 방비에 주력하자는 주장이 조정 일각에서 제기되었지만 이순신의 반대로 수군이 살아남았다. 이순신의 수군은 왜적을 과소평가하지 않았고, 왜적을 이길 수 있는 전함과 전술 개발에 매진했다. 신립은 절절한 충정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지키지 못했다. 왜군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킨 것은 이순신의 수군이었다.

최근 몇 년 일본과의 마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없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고 들었는데 패널은 구성이 되었는지, 논의에는 진전이 있는 것인지 보도가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역시 대법원 판결이 난 지 2년이 넘었지만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는 감감무소식이다. 압류해야 하는지 아닌지, 압류할 수는 있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도쿄올림픽조직위의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더 황당하다. 이미 2년 전에 불거진 문제였는데 그동안 별말이 없다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새삼 뉴스가 되었다. 정치권 일각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었지만 늘 그렇듯 국내용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국내에서 호통을 치는 것 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움직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이대로라면 일본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도 막을 수 없을 듯한데, 국제 여론은 왜 우리 편이 아닌가?

이 모든 마찰의 원인이 일본에 있고 일본이 악의 축이라 하더라도,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 일본에 대처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방안을 찾고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그리고 한일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의 일본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정말 잘 알고 있다면 대일정책이 왜 이리 표류를 거듭하는 것일까? 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외국이고, 인터넷에는 일본에 관한 기사와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왜구에 대한 정보만으로 왜군을 상대할 전략을 짠 신립처럼 지금의 우리도 낡은 정보, 편향된 시각만으로 일본을 상대할 전략을 짜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가 잘 모르는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대일정책을 제대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낡은 정보#시각#일본#대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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