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영국이 골목사장님 MBA 보내는 이유

박용 경제부장 입력 2021-06-16 03:00수정 2021-06-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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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기본소득 뜬구름 논쟁할 때
영국은 자영업자 역량 강화에 투자
박용 경제부장
미국 뉴욕 맨해튼 소호엔 2010년 창업한 온라인 안경점 ‘와비파커’ 뉴욕 본사가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고 시력과 얼굴에 맞는 맞춤형 안경을 집으로 보내주는 ‘D2C(생산자 직접판매)’ 모델을 내놓아 성공한 혁신기업이다. 창업자들은 명문 경영학석사(MBA) 과정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재학생들이었다. 여행 중 안경을 잃어버렸다가 비싼 안경값 때문에 한 학기를 안경 없이 보낸 고통이 창업의 동기였다. 젊은 MBA 학생들의 도전이 독점기업이 장악한 미 안경시장을 바꾼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가 사회적 타협제도인 ‘한걸음 모델’을 통해 온라인에서 도수 있는 안경을 살 수 있게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규제가 풀리면 소비자는 편해지고 시장은 더 커질 수 있으나 기존 안경점들은 와비파커 창업자들처럼 최신 기술과 MBA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도전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기존 사업자의 변화 의지와 혁신 역량이 없다면 규제 완화는 갈등을 부르고 한국 사회는 또 주저앉게 된다.

이런 점에서 골목사장님들을 ‘디지털 혁신 전사’로 키우려는 영국의 파격적 실험에 눈길이 간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은 서비스업종 상·하위 10% 격차가 독일 프랑스 미국에 비해 80% 이상 크다. 영세 서비스업종의 낮은 생산성이 영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억 파운드(약 3154억 원)를 투입해 3월부터 골목사장님들을 위한 12주짜리 미니 MBA 과정인 ‘성장을 위한 지원(Help to Grow)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경영역량이 높아지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게 영국 정부의 분석이다.

미니 MBA 과정은 사업으로 바쁜 사장님들의 일정을 고려해 마케팅과 재무 등에 대한 2시간짜리 온라인 강의 8개와 강의실에서 배우는 MBA식 ‘케이스 스터디’ 4개 세션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다 1 대 1 사업계획 멘토링, 동료 및 졸업생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지원한다. 1년 이상 사업을 하고 있는 고용원 5∼249명의 중소사업장 경영자가 지원할 수 있는데,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등록금의 90%만 국가가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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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은 영국의 침체된 지역과 지방대학에도 기회다. 35개 영국 경영대학원들이 참여할 계획이다. 이미 10개 프로그램이 학생 모집을 시작했고 4곳은 정원을 채웠다. 영국 정부는 올가을부터 골목사장님들이 사업을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온라인 무료 상담을 해주고 소프트웨어 구매비의 절반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작한다.

영국의 파격 실험이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자영업 비중이 24.6%로 미국(6.1%), 일본(10.0%), 독일(9.6%)보다 훨씬 높고 영세 자영업자의 낮은 생산성, 지역과 지방대학의 침체를 고민하고 있는 한국이 배울 점이 있다. 한국 자영업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어렵다. 과거와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최저임금만 올리면 골목사장님들은 직원을 줄이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경영난을 겪는 자영업자들을 집중 지원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해법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게 생산적이다.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한 ‘물고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당장은 필요해도 중장기적으로는 변화에 적응하고 도전에 응전하는 생존기술인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영국은 그 길로 이미 들어섰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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