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가 요구하는 통상전략[기고/안덕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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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다음 달 초 발표 예정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 전략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통상정책보다 한층 대응하기 어려운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둘 다 핵심 목표는 중국 견제지만 전략과 방식이 판이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등 동맹에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각종 무역보복 조치를 남발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등 특정 기업도 겨냥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단순한 무역적자 수치 개선과 특정 기업 손보기를 넘어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6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텃밭으로 여겨졌던 중북부의 낙후된 공업지대, 이른바 ‘러스트벨트’의 노동계 유권자를 빼앗겼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전략은 기존 각국의 통상정책과 달리 한국 정부가 대응할 여지가 적은 편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2001년부터 추진했던 도하 협상이 사실상 무산된 후 각국이 속속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나서면서 주요국 정부의 통상 협상 기능은 꾸준히 강화됐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은 반도체 등 각종 첨단산업의 무역, 투자, 생산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미여서 관련국 정부와의 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인공지능(AI), 차세대 배터리, 양자컴퓨터, 위성항법 기술 등에서 중국의 기술력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서 미국 또한 동맹과 연합해 공급망 자체를 미국 중심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즉,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산업의 투자와 생산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과 세부 논의를 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FTA와 달리 한국 기업들 또한 정부가 협상하는 동안 정부의 보호막 뒤에서 생산 및 수급 구조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장 발판이었던 글로벌 공급망이 양대 패권국의 최대 격전지로 변했다는 점은 한국에 상당한 부담이다.

미국의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이 가시화하면 플랫폼 산업을 주로 다루는 각국과의 디지털 무역협상 또한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 의회가 지난달 발의한 ‘2021년 전략경쟁법’에서 미국이 디지털 통상 협상 대상 국가로 일본 대만 EU만 지목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통상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해석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급변하는 통상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윗 한 줄에 관세가 부과되고 무역정책 방향이 공개되던 시절은 지났다.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외교안보정책과 마찬가지로 동맹과의 연대를 가장 중시한다. 정부는 한국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강화하고 기업 또한 산업별로 특화된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민관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바이든시대#요구#통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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