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성수 “韓기업 美직상장 우려”… 복수의결권 입법 미룬 탓

동아일보 입력 2021-04-15 23:00수정 2021-04-1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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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 동아일보 DB.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어제 한국거래소에서 증권사 대표들과 만나 “유망 기업들이 해외 직상장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거래소는 유망 기업들이 우리 증시에 상장돼 투자자들에게 더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고민해 달라”고 했다. 지난달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하고, 마켓컬리가 미국행을 공식화한 데 이어 카카오 계열사 등이 미 증시 상장을 검토한다는 말이 나오자 대응책을 주문한 것이다.

상장 비용이 10배나 드는데도 한국의 유니콘(자산 가치 1조 원 이상 벤처)들이 미 증시 문을 두드리는 건 자금 조달 규모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쿠팡이 한국에 상장했다면 45억5000만 달러 자본 조달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유망 기업을 국내로 끌어들이려면 훨씬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

하지만 제도 경쟁력에서 한국 증시는 열악한 상황이다. 투자를 유치할 때 창업자 의결권이 지나치게 축소되는 걸 막아주는 ‘복수의결권제’가 대표적이다. 뉴욕증시에서 주당 29배의 의결권을 인정받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지분이 줄어도 경영권 방어에 신경 안 쓰고 공격 경영에 나설 수 있다. 미국 일본 독일은 물론이고 홍콩 싱가포르도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에서는 작년 말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 발의됐고 여야 의원 다수가 찬성하는데도 여전히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재벌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창업주 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때에만 최장 10년간 허용하고, 상장 후 3년 뒤 보통주로 전환해야 하는 등 엄격한 조건이 붙었는데도 이런 반대가 먹혀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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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가치가 높은 벤처기업들이 우리 증시에 머물길 바란다면 복수의결권 문제부터 서둘러 풀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실질적 제도 개혁 없이 기업인의 애국심에만 의지하려 든다면 더 많은 유망 기업이 한국을 떠나는 걸 하릴없이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한국 증시#해외 직상장#복수의결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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