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손효림]기억을 잃어가는 존재들 마음 열면 더 이해한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4-12 03:00수정 2021-04-12 04:5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손효림 문화부 차장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만나게 해줘.”

흐느껴 울면서 간절히 엄마를 찾는 이는 아이가 아니다. 백발의 노인이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앤서니는 요양병원 간호사의 어깨에 기대 하염없이 울며 말한다. 84세의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분장이 필요 없고 이름마저 자신과 같은 앤서니 그 자체가 된 듯하다.

‘더 파더’는 앤서니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며 알츠하이머 환자가 겪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처음 보는 여성이 딸 앤이라고 말하고, 거실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낯선 남자가 있다. 앤은 혼자 사는데 그 남자는 앤의 남편이란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병원 복도가 나타나고 잠깐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몇 주가 지났다고 한다. 사람, 공간, 날짜가 수시로 휙휙 바뀐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는 많지만 가족, 간병인의 시각에서 그렸기에 안타까운 감정이 주를 이룬다. ‘더 파더’를 보며 환자의 입장이 비로소 이해됐다. 이런 거구나. 이상하고 답답하다가 점점 두려워진다. 겁을 먹은 채 막막함에 울음을 터뜨리는 앤서니를 보니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주요기사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이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언제 왔니?”라고 스무 번 이상 묻는다고 한다. 그 역시 스무 번 넘게 답한다. 아버지는 그 상황이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리라.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그가 살아온 역사는 엄연히 존재한다. 박희병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암과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생애 마지막 1년 동안 간호하며 어머니가 한 말을 적고, 그 의미를 헤아려 정리한 책 ‘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환자의 말 하나하나에 그가 겪은 세월이 묻어남을 깨닫게 한다. 어머니는 병원에 온 아들에게 “피곤한데 베개 내 잠시 자고 가라”고 한다. 서울 수유리 집에 온 그에게 하던 말이었다. 어머니는 수유리 집에 있다고 혼돈하면서도 아들을 챙겼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요양원에서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돌봄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를 쓴 전계숙 요양보호사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대화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기에 얘기가 엉뚱하게 흘러도 이어가라고 조언한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환자가 ‘부처님 오신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에 드디어 그날이 되자 알려드렸다고 한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부처님이 어디 갔깐?” 이런 유머는 어디에서도 못 찾을 거라 단언한다. 그는 환자가 인식하는 상황이 달라져도 이를 인정하고 말하다 보면 유쾌하게 지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령사회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가족, 지인,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이가 기억을 잃는 모습,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고통스럽다. 다만 먼저 경험한 이들이 책으로 전하는 이야기,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은 이 병에 대해 좀 더 알게 만든다. 상황이 닥쳤을 때 견딜 수 있는 힘은 그렇게 조금씩 생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기억#존재#마음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