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 국민 노후자금 운용, 주식투자자 눈치 보기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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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어제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이는 안건을 토의했으나 결론을 못 내고 한 달 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연일 매도 행진을 하는 국민연금을 주가 상승의 걸림돌로 보는 ‘동학개미’들은 실망스럽겠지만, 노후를 국민연금에 맡긴 많은 국민들로서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일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민연금은 운용수익률을 관리하기 위해 매년 5월 자산별 비중을 조정하고 연말에 이 수준에 맞춘다. 작년에 정한 국내 주식 보유 범위는 14.8∼18.8%였다. 하지만 주가가 급등하면서 작년 말 운용자산 833조 원 중 국내 주식 비중이 21.2%까지 높아졌다. 그 바람에 올해 들어 16조 원어치를 팔았고 10조 원가량 더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이 증시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청와대 청원 등을 통해 성토해 왔다.

국민연금이 평년보다 두 달 앞당겨 기금운영위를 열기로 하자 “결국 동학개미가 이겼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날 기금운용위원회가 밀리듯이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 등에서 한국 기업들이 선전(善戰)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순수하게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검토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여론에 떠밀려 논의를 하는 것은 기금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국민연금은 2030년경부터 자산을 팔아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지금 국내 주식을 과도하게 늘리면 나중에 팔 때 주가 급락을 유발해 연금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게 될 위험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노후에 돌려받기 위해 소득 일부를 떼어내 관리를 맡겼을 뿐이다. 향후 논의에서도 국민연금은 장기적으로 수익을 늘려 약속한 연금을 차질 없이 지급하고, 2055년으로 예상되는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현재의 주식투자자 목소리만 의식해 한국인의 노후를 위협하는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
#노후자금#주식투자자#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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