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충현]최장수 경제부총리 조건 ‘백기 든 로봇’은 아니다

송충현 경제부 기자 입력 2021-03-18 03:00수정 2021-03-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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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경제부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61)이 다음 달이면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라는 기록을 세운다.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를 이끄는 경제 사령탑은 경제부처 공직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다. 워낙 격무여서 2년을 버티기 어려운 자리인데도 최장수 기록을 세운 것 자체는 영예로운 일이다.

홍 부총리는 그간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자주 뜻을 굽혀 ‘백기’, 의지에 비해 결과가 초라하다는 뜻으로 ‘용두사미’에 빗댄 ‘홍두사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이야 이 별명들이 익숙하지만 그는 부총리 취임 전까지만 해도 이와는 사뭇 다른 별명으로 불렸다.

홍 부총리와 함께 일한 관료들은 그를 ‘로봇’이라고 한다. 그의 강점인 성실함에 대한 일종의 찬사다. 새벽에 별 보며 출근해 밤에 별 보고 퇴근하는 일상으로 공직생활을 채웠다.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실무에서 일할 때와 부총리가 된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를 ‘예스맨’으로 기억하는 이도 있다. 윗선의 지시가 떨어지면 거절하지 않고 일을 해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다른 생각이나 뜻이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직을 움직이는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일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부총리에 오른 것도, 다음 달이면 역대 최장수 경제사령탑 자리에 오르는 것도 이런 성품과 태도가 후한 평가를 받아서일 것이다. 청와대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마찰을 빚으며 자리에서 물러난 뒤 성실하고 우직하며 갈등을 꺼리는 홍 부총리를 발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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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부총리에 오르기 전보다 훨씬 박하다. 홍 부총리는 재정 운영의 권한을 쥐고도 청와대와 여당의 요구에 번번이 나라 곳간의 열쇠를 내줬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요건 완화와 증권거래세 인하 등 민감한 이슈에서도 뜻을 접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갑자기 백기를 든 것도, 느닷없이 시작이 창대했으나 끝이 미약해진 것도 아니다. 원래 그렇게 일하던 사람이었고, 청와대가 그를 임명할 때 높이 평가한 면도 당청과 잘 조율해(혹은 잘 따라) ‘원 보이스’를 낼 적임자라는 점이었다. ‘홍백기’ ‘홍두사미’ 등의 별명은 ‘예스맨’ ‘바지사장’의 진화이자 변주인 셈이다. 그래서 관가에서는 홍 부총리가 앞으로도 간헐적으로 소극적 저항을 하겠지만 순응적 일처리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장수 부총리의 타이틀은 거저 얻는 게 아니다. 책임도 따른다. 방만하게 지출된 재정에 대한 청구서는 반드시 날아온다. 그때가 되면 국민들은 돈 풀기에 앞장선 정치인들과 함께 홍 부총리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홍 부총리가 그때 “내 페이스북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고 저항하지 않았나”라고 면피하려 드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국민들은 열이면 열 ‘백기 드는 로봇’보다 필요하다면 말이 아닌 행동과 결과로 소신을 밀고 나갈 줄 아는 최장수 부총리를 원한다. 역사에 어떤 최장수 부총리로 기록되느냐는 홍 부총리에게 달려 있다.

송충현 경제부 기자 balgun@donga.com
#최장수#경제부총리#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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