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김근태 토론에 비친 巨與의 폭주와 무능[광화문에서/최우열]

최우열 정치부 차장 입력 2021-03-06 03:00수정 2021-03-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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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최우열 정치부 차장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항상 조심스러워하고 존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김 장관과 격한 언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영리병원 도입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인천 송도에 한정해 영리병원을 허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에도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김 장관을 청와대로 호출해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과 삼자대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된다”며 오히려 대통령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니, 밖에 나가 보면 사람들 얼굴도 다 다르게 생겼지 않소. 돈 있으면 성형 수술을 해서 예뻐지기도 하고,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얼굴로 잘 사는데, 그것도 다 금지해야 합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영리병원 추진은 보류됐지만, 김 실장을 비롯해 당시 노무현의 국정 운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얽매임이 없는 실용적인 사고를 높이 평가했다. 또 하나. 실수를 줄이기 위해 찬반 주장의 근거를 치열하게 검증해 접을 건 접고 추진할 건 하는 프로페셔널한 행정가의 면모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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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엔 과연 전문성과 행정가적 유능함이 있는지 의문이다. 부동산대책부터 이른바 ‘검찰·법원개혁’ 추진을 위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임성근 판사 탄핵까지. 주요 과제들의 추진은 하나같이 좌충우돌해 왔다.

땜질식 부동산정책들이 쏟아진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부작용이 가시지 않고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징계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추진은 윤 전 총장의 사실상 정치 데뷔라는 정치적 풍선효과에 직면했고, 초유의 판사 탄핵 역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 위에 위태하게 올라가 있다.

목표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다 제쳐두더라도 그 목표가 하나라도 제대로 달성된 것이 있는지 선뜻 내세우기 어려울 지경이다. 성공한 것이 하나 있다면 여권의 물적·인적 자원을 총동원해 이룬 총선 승리와 180석 범여 거대 의석의 힘으로 무능한 국정 운영을 포장한 것 정도 아닌가. 이쯤 되면, 거여(巨與) 폭주가 문제가 아니라 무능의 문제를 짚어야 할 상황이다.

1인 독재 국가가 아니라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요건 중 하나가 토론과 설득의 과정이다. 유능한 정부가 되려면 과정도 매끄러워야 한다. 노 대통령에게 김근태 장관이 있었듯,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정부 내 반대 의견과 야당도 엄연히 존재한다. 과연 이 정부와 여당의 누가 부동산정책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치열한 논쟁을 했는지, 검찰총장 징계의 절차상 문제점에 대해 ‘노무현과 김근태식의 격론’을 벌여 본 적이 있는지 심각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이것이 곧 무능의 문제를 풀 길이기 때문이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
#노무현#김근태#토론#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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