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드파르디외[횡설수설/황인찬]

황인찬 논설위원 입력 2021-02-25 03:00수정 2021-02-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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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팽조, 당신과 함께 있으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27세 연하 연인인 안 팽조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1962년 처음 만나 죽기 전까지 보낸 1218통의 러브레터 중 하나였다. 그는 부인 다니엘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상태였다. 팽조는 미테랑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함께 미테랑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첫 공개 석상에 나왔다. 34년간의 밀회가 끝난 뒤였다.

▷프랑스 대통령의 스캔들은 낯설지 않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일본 여성과의 혼외 정사설이 나왔고,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전 대통령은 밀회 상대의 집에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부인과 결혼을 유지하며 모델 카를라 브루니와 동거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한밤중 여배우인 연인 집에 가려고 스쿠터를 몰고 파리 거리를 달렸다. 성에 개방적인 프랑스여서 가능한 일이다.

▷1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73)가 2018년 8월 파리 자택에서 20대 여자 배우를 두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재조사를 통해 지난해 12월 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프랑스 대배우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가해자가 되자 비난 여론도 뜨겁다.

▷드파르디외는 2014년 영화 ‘웰컴 투 뉴욕’에서 성범죄 가해자 역할을 맡았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유력 경제인이 미국 뉴욕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환락을 즐기고, 호텔방을 청소하러 온 흑인 객실 청소 직원에게 성폭행을 시도해 몰락하는 얘기다. 이 영화는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국제적 망신 이후 프랑스 내 각성의 목소리가 높았고 관련 영화까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드파르디외의 인생이 그 영화를 닮아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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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관대했던 성 인식이 권력과 연결되면 왜곡되고, 심지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미투 열풍’과 맞물려 커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인 ‘동의(Le consentement)’를 통해 프랑스 문단 내 남성 원로 작가의 성폭력을 고발한 바네사 스프링고라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대를 증언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성폭행 의혹을 받거나 ‘미투’를 폄훼한 장관 2명을 임명하자 거센 비난이 이는 등 프랑스의 성 인식은 엄격해지고 있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성폭력 가해자까지 감싸고도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도 뿌리 뽑을 때가 됐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성폭행#드파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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