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가는 쿠팡[횡설수설/이은우]

이은우 논설위원 입력 2021-02-15 03:00수정 2021-02-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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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친 짓이야(That‘s insane).” 지난해 쿠팡에 합류한 전준희 부사장이 미국 동료들에게 들었던 얘기다. 여기서 미친 짓은 하루 만에 배송하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스템이다. 요즘은 당일 배송까지 된다. ‘한국적’ 속도를 앞세운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쿠팡은 쿠폰이 팡팡 쏟아진다는 뜻이다. 이름부터 사업 모델까지 한국 느낌인 쿠팡이 뉴욕으로 가는 것은 자금 조달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에서 금지된 차등의결권 획득도 뉴욕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벤처업계는 보고 있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쿠팡은 두 종류의 주식이 있다.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A 주식과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B 주식이다. 클래스B 주식은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만 소유한다. 차등의결권을 가진 김 의장은 2%의 지분만 가져도 5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미국과 유럽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한국은 1주당 1표의 의결권만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을 주는 이유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다. 특히 벤처기업은 대규모 투자 유치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지분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걱정 하지 말고 경영과 혁신에 전념하라고 주는 게 차등의결권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급성장한 혁신기업들이 창업자나 최고경영자에게 차등의결권을 주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나스닥에서 차등의결권을 가진 곳이 일반기업에 비해 매출은 2.9배, 영업이익은 4.5배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복수의결권이라는 이름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통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최대 10표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할 방침이다. 정부는 벤처기업의 성장 사다리로서 복수의결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들은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면 경영진이 무능해도 제어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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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미국행은 조금 아쉽다. 한국이 키운 거대 기업이 해외증시를 선택하는 데 규제 성격의 제도도 한몫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자본시장에는 국경이 없다. 좋은 시장에는 유망 기업들이 몰려들어 자본 유치와 투자가 이뤄진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2018년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것은 증시에 우량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증시가 제2의 쿠팡을 유치하려면 차등의결권뿐만 아니라 기업 관련 제도 전반을 열린 자세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뉴욕#증시#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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