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지갑부터 열어주세요[오늘과 내일/김종석]

김종석 스포츠부장 입력 2021-01-30 03:00수정 2021-01-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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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르네상스 이바지 고 김상하 회장처럼
기업인 경기단체장들 소통-지원 힘썼으면
김종석 스포츠부장
한국 스포츠는 연말연시를 선거 열풍 속에 보내야 했다. 대한체육회와 68개 회원단체 회장의 임기가 1월 중 끝나 일제히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회장 임기는 올림픽과 같은 주기인 4년.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선거를 완료한 64개 회원단체 가운데 경선을 치른 곳은 27개였다. 골프, 배드민턴, 소프트테니스(정구) 등은 처음으로 복수 후보가 나서 치열한 레이스를 펼쳤다. 코로나19로 직접 투표가 쉽지 않았으나 투표율은 대개 90%를 넘나들었다. 단체별로 전국에서 모여든 선거인단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선출된 회장 27명 가운데 경기인 출신은 4명으로 집계됐다. 선거 완료 64개 단체의 신임 회장 가운데 기업인은 43명으로 4년 전 36명에 비해 대폭 늘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기업인 강세는 경기단체의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해진 영향으로 보인다. 2019년 대한체육회 회원단체 재정자립도는 55% 수준. 대기업 총수가 장기간 회장을 맡은 축구, 양궁, 핸드볼, 펜싱 등 형편이 나은 단체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외부 지원 없이는 존립도 힘든 구조.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위기 상황을 맞아 기업인 회장을 맞으면 출연금 등을 통해 숨통을 틀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커졌다.

이번 선거가 자체로 가외수입의 효자가 되기도 했다. 후보 등록을 하려면 2000만∼50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득표율에 따라 반환 비율은 달라진다. 재정자립도가 30% 수준인 한 단체는 기탁금(5000만 원) 외에 무조건 귀속되는 발전기금(3000만 원)까지 추가로 받았다. “회장 뽑으면서 비용 2000만 원을 빼고도 1억2000만 원을 남겼다. 선거를 자주 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조 섞인 설명을 하던 협회 관계자의 쓴웃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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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일수록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난주 숙환으로 별세한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은 체육 발전에도 헌신했다. 경복중과 서울대에서 농구선수를 한 고인은 1985년부터 12년 동안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지내며 한국 농구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농구대잔치를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겨울스포츠의 꽃으로 만들어 프로농구의 초석을 다졌다.

‘협회 재정 상태를 보니 기가 막혔다. 협회 직원들은 무보수로 봉사하는 듯했다. 정상화를 위해 재정 확보가 최우선이었다.’ 고인의 회고록 내용이다. 농구협회장 취임 직후 빈 ‘곳간’에 주목한 고인은 10년 동안 재정자립기금으로 40억 원을 출연했다. 언젠가 기업 의존 없이 경기인만으로도 협회가 홀로 설 수 있게 하려고. 이 기금은 아직도 한국 농구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고인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직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농구장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질적인 병폐인 학연을 없애고 누구든 소외된 느낌이 들지 않도록 고르게 인재를 중용한 뒤 확실한 업무 분담을 시행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는 “회장의 독단보다 농구인 마음이 하나가 되는 합의를 중시하셨다. 이사회를 하면 골고루 발언 기회를 주고, 설득을 통한 의견 일치에 도달하느라 회의가 새벽 2시에 끝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한국 스포츠 최일선을 책임지는 단체들의 열악한 현실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농구와 80년 인연을 맺은 고인이 코트 안팎에서 보여준 발자취는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요즘 경기단체 사무실에는 회장 관련 축하 화환이 넘쳐난다. 핑크빛 공약보다 산적한 현안이 무겁게 다가온다. 축배는 4년 뒤 임기 끝날 때 터뜨리면 좋겠다. 남은 여정은 멀고 험하다. 김상하 회장이 남긴 회고록 제목은 ‘묵묵히 걸어온 길’이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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