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주도 요금 인하가 불러올 부작용[오늘과 내일/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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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요금 낮추니 저가업체 비명
‘메이저 3사’ 과점 더 공고해질지도

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처 등으로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생활밀착형 지도자’를 표방한다. 그는 지난해 9월 취임 직후부터 “3대 통신사의 과점으로 데이터 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 낮출 여지가 있다”고 압박했다. 결국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등 3개사가 백기를 들었다. 이들은 3월부터 데이터 요금을 대폭 낮춘 새 요금 체계를 내놓기로 했다.

기자는 60GB(기가바이트)에 월 6550엔(약 7만2000원)인 NTT의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실제 쓰는 데이터는 매월 10GB 미만이지만 그간 20, 30GB대 상품이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대용량 서비스를 썼다. 여기에 통화료까지 추가하면 매월 통신비로만 십수만 원이 들었다. 새로 출시되는 2980엔짜리 20GB 서비스로 갈아타면 데이터 요금에서만 매달 3만 원 이상을 아낄 수 있다.

다만 일본 정부가 ‘관제 요금 인하’의 후폭풍까지 철저히 계산한 채 이를 밀어붙였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스가 정권이 비싼 요금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메이저 3사의 과점 체계가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라쿠텐, IIJmio 등 저가 사업자는 그간 3대 통신사의 회선을 빌려 쓰고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만 고객을 상대해 가격을 낮췄다. 이들의 주력 상품은 대부분 5GB 데이터를 월 2000엔 전후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3월부터 3대 통신사 또한 비슷한 가격의 서비스를 내놓으면 중소형 통신사 고객의 상당수가 3대 회사로 이동할 것이 뻔하다. 시장조사회사 MM소켄은 요금이 개편되는 3월 기준으로 저가 사업자의 계약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한 1300만 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2012년 데이터 전용 저가 사업자가 등장한 이후 9년 만에 처음 계약자 감소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저가 사업자가 3대 통신사의 회선을 싸게 빌릴 수 있도록 하고,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의 통신시장 진입을 허용한 주체가 정부임을 감안할 때 자가당착 행보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쟁을 부추길 때는 언제고 저가 사업자의 타격이 예상되는 정책을 내놓느냐는 의미다. 특히 스가 정권이 지지율 하락 여파로 갑자기 물러나면 3대 통신사가 슬그머니 요금을 다시 올릴 수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권만 줄어들 수 있다.

3대 통신사의 불만도 상당하다. 4400만 명인 소프트뱅크 이용자 중 30%가 현재의 대용량 데이터 요금제 대신 새 요금체계로 갈아탄다고 가정하면 약 3000억 엔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NTT와 KDDI 역시 비슷한 수준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3개사의 설비투자가 감소하면 국가 통신 인프라의 낙후가 불가피하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국민 안전과 국가안보에 상당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약 7000개인 3대 통신사의 대리점 또한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단말기 판매 및 계약 성사 때 통신사로부터 받는 수당이다. 3대 통신사는 새 요금제를 인터넷 직접 판매로만 출시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지만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대리점 업계는 심각한 생계 위협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내수 위주의 일본 경제 역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연쇄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스가 정권의 모습에서 한국 여당이 주장하는 이익공유제가 겹쳐진다. 겉으로는 “자율성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 정책을 압박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시장가격을 교란한 각국 정부가 기대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심각한 경제적 후폭풍만 야기했다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정부#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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