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벤처 617개가 만든 괜찮은 일자리 23만개’가 뜻하는 것

동아일보 입력 2021-01-26 00:00수정 2021-01-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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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매출 1000억 원을 넘는 한국 벤처기업의 임직원 수가 23만15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외에서 28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삼성그룹에 버금가는 숫자다. 매출 1000억 원 이상 벤처기업은 617개로 1년 전보다 30개 늘었고, 평균 382명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고용 없는 성장’이 가속화하는 한국 경제에서 든든한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 된 것이다.

평균 기업 연령 17.5세인 이들 ‘청년기업’은 대기업보다도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율은 2.8%, 순이익률은 5.9%로 평균적 대기업보다 모두 높고 한국 수출의 20분의 1을 책임지고 있다. 이런 기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근무 여건이 좋고 미래가 밝아 청년들이 선호한다. 정부 예산 지원이 끊기면 사라지는 단기 재정 일자리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이런 일자리를 일궈낸 벤처기업인들이 ‘한국에서 기업 하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판 우버를 꿈꾸며 시작된 ‘타다’는 정부 여당이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킨 뒤 관련 영업을 접어야 했다. 50인 이상∼300인 미만 기업까지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대됨에 따라 손발이 묶인 한국 게임벤처들은 중국과의 게임 개발 속도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투기자본의 공격을 쉽게 만들어 창업자의 지분이 높은 상장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한다.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활성화한다며 정부가 허용하기로 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챙기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각종 제약이 붙는 바람에 벤처 생태계 활성화란 본래 취지가 상당 부분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출 1000억 원을 넘긴 벤처의 다음 꿈은 ‘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벤처기업’, 즉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세계 500여 개 유니콘 기업 중 한국 기업은 20개로 미국(242개) 중국(119개)에 비해 현저히 적고 인도(24개)에도 못 미친다. 이들 기업 중 몇몇은 ‘코로나19 속에서도 성장한 죄’로 최근 여당이 추진하는 이익공유제의 표적이 됐다. 벤처기업들이 규제에 발목을 잡히고, 성장을 두려워하는 ‘피터팬 신드롬’에 빠지게 되면 우리 청년들의 괜찮은 일자리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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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일자리#일자리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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