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성적표 남기고 떠나는 외교수장[오늘과 내일/이정은]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01-25 03:00수정 2021-01-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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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씁쓸한 퇴장
특정 정권 위한 외교 정치화에 쏟아진 비난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과 국무부 청사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워싱턴 특파원 부임 직후였던 2019년 초, 그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Hi, Sir!)”라고 크게 인사를 했다.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돌려주는 그를 보며 셀럽이라도 만난 것처럼 신이 났다. 거구의 호남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듬뿍 받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 그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았다. 이후 2년간 기자가 쓴 폼페이오 관련 기사는 320건. 일주일에 평균 3번은 그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쓴 셈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였지만 마지막은 초라하다 못해 흉하다. 동맹국들로부터는 경멸당하고, 적대국한테는 비웃음을 당하고, 동료 외교관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 국무장관이라는 게 워싱턴의 냉정한 평가다. 주요 외교 현안이었던 이란과 북한 문제는 되레 악화시켰고, 일부 중동 문제를 빼면 성과도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위기에 처한 부하 직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단숨에 해고해버리는 수장에게 국무부 직원들도 등을 돌렸다.

그는 지난주 퇴임 직전까지 이란, 중국에 대한 제재와 성명을 쏟아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보란 듯이 트럼프식 대중(對中) 강경 노선에 대못을 박아두려는 마지막 몸부림에 외교가는 냉소했다. 퇴임 당일 트위터에 올린 고별 메시지에는 “문화다원주의는 미국적이지 않다”고 썼다가 인종주의 논란까지 불렀다. 미국 언론들 사이에서는 폼페이오가 ‘사상 최악의 국무장관’인지를 놓고 논쟁까지 벌어졌다. 뉴욕타임스는 “폼페이오가 (외교관계에서) 불사르지 않은 다리가 없다”고 비난했고, 포린폴리시는 “폼페이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한 가지는 ‘이제 드디어 (임기가) 끝났다’는 것”이라고 악담했다.

폼페이오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무엇보다 그의 정치적 야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장관 재임 기간에도 2024년 대선 출마를 계속 저울질해 왔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밀어줄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했을 터. 공직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해치법’ 위반 논란까지 감수하며 공화당 전당대회에 내보낼 트럼프 지지 동영상을 촬영한 게 대표적이다. 결국 외교를 정치화하고 트럼프 정권을 위해 직위를 남용했다는 비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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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그의 카운터파트였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같은 시기 퇴임했다. 폼페이오 같은 시끄러운 반응은 나오지 않았지만, 무능함이라는 또 다른 이유로 한국 외교를 실종시켰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외국 공관에 파견된 한 외교관은 “매주 본부의 간부회의 내용을 받아보면 일반적인 점검사항만 들어 있을 뿐 한국 외교의 방향이 뭔지 알려주는 내용은 없었다”며 “리더십의 외교철학이나 큰 그림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고 했다. 이국만리에서 일하는 외교관들의 실망감과 방황을 읽었던 순간이다.

이제 한미 양국 모두 새로운 외교수장을 맞는다. 어떤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지, 상호 간 어떤 케미를 발휘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걱정스러운 것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임명을 놓고 벌써부터 한미관계가 또다시 삐거덕거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비핵화 진전 없는 남북관계 개선의 조급증이 대북 강경파로 채워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과 충돌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스멀거린다.

외교는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고 정치의 대상도 될 수 없다. 특히 외교에 한반도 운명이 걸려 있는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무능함과 정치적 남용 모두 용납 불가다. 망가진 채 퇴장하는 폼페이오 장관의 어두운 뒷모습이 새 외교수장들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성적표#외교수장#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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