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를 오독하는 한국의 ‘조지스트’들[광화문에서/김유영]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1-15 03:00수정 2021-01-15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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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다음 달 발표될 주택 공급 대책에 관심이 높다. 대통령이 공급 대책을 주문한 건 늦었지만 다행이다. 주무 부처 장관이 공급론자인 점도 반갑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에 집 지을 공간은 충분하다”며 도심 역세권과 저층 주거지 개발 방안 등을 거론했다.

단, 이런 공급에 전제를 달아 놓았다. 공공이 개입해서 개발하고 공공이 개발 이익을 환수 해야 한다는 것. 다음 달 대책에서도 이런 철학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는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토지에 대한 이윤을 환수해야 한다는 19세기 사상가 헨리 조지의 철학에 영향받은것으로 보인다. 변 장관은 학부 시절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주거 문제에 관심 갖게 됐다고 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로 알려진 김수현 세종대 교수와 함께 ‘조지스트’로 꼽힌다.

헨리 조지는 부의 상당 부분이 토지 소유자에게 지대(rent) 형태로 옮겨지므로 불로소득(unearned income)이 불평등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토지는 한정돼 있는데 노력 없이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소득을 거두는 게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 그는 토지에 세금을 매겨 불로소득을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사상은 노동운동이 위축됐던 유럽에서 큰 호응을 받았고 국내에선 유신 독재시절 대학생들 사이에서 읽혔다.

우연인지 헨리 조지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드리운다. ‘어용지식인’을 자처한 친여(親與) 인사는 최근 헨리 조지를 언급하며 “부동산 세금이 너무 헐렁하다. 불로소득에 더 높은 비율로 과세하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현재 보유세와 거래세 등이 대폭 올랐지만 집값 상승세가 세금이 낮아서 빚어진 것처럼 말했다. 그런가 하면 현 법무부 장관은 여당 대표 시절 “헨리 조지가 살아 있었다면 땅의 사용권은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식이 타당하다고 했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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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게 있다. 헨리 조지가 제안한 건 토지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건물을 짓거나 조경을 하는 등 인간의 노력을 투입해 토지가치를 높이는 행위엔 세금을 매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토지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저하시키면 안 된다는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부동산 개발엔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드넓은 땅이 있던 19세기 미국과 주택 공급에 허덕이는 21세기 한국은 다르다. 더욱이 지금은 건설공법 발전으로 인위적인 노력을 들여 건물 지을 공간마저 ‘창조’할 수 있는 시대다.

시장은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을 통해 시세차익 환수 장치를 두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많은 재건축 단지들이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재개발이든 공공재건축이든, 역세권 개발이든 빌라촌 개발이든 결국은 수많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관건이다. 인구 밀집도가 극도로 높은 특성상 서울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개발에 대한 이익을 적정 규모로 인정해 주지 않고 이런 수요를 획기적으로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역시나 그저 그런 대책 중 하나가 될 확률이 높다. 인간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물이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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