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오늘, 일 년 뒤 오늘[오늘과 내일/김희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대재앙 이겨내며 진보하는 인류
더 강해져 맞이할 내년을 기다린다

김희균 문화부장
김희균 문화부장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 보자. 지난해 바로 이날 아침, 나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누군가는 인파에 묻혀 일출의 감동을 만끽한 뒤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을 거다. 누군가는 가족 친지와 둘러앉아 따듯한 말과 밥을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식당에서, 마트에서, PC방에서 저마다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했을 테다.

이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자. 십중팔구는 설레는 여행지 대신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지려 하는 집 안이 보일 것이다. 한동안 못 만나 더욱 그리운 이들은 여전히 손에 닿지 않을 거다. 새해 첫날이면 으레 북적이던 목욕탕과 영화관도 괴괴할 것이다.

잠시 150년 전 미국 시카고로 떠나 보자. 바다처럼 광활한 미시간 호수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윈디 시티’ 시카고가 1871년 10월 불의 도시로 변했다. 시카고 대화재(The Great Chicago Fire)다. 토요일 밤 농가에서 발생한 불길은 강풍을 타고 도심으로 무섭게 번졌다. 꼬박 이틀 넘게 도시가 타오르면서 시내 건물 3분의 1이 전소됐다. 약 300명이 숨졌고 10만여 명이 살 곳을 잃었다. 예기치 못한 대재앙 앞에 사람도 건물도 일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인류란 그리 만만한 종(種)이 아니다. 잿더미 속에 모인 시카고 시민들은 참사를 극복할 수 있다고 외쳤다. 세계적인 건축 명장들이 도시 재건을 위해 모여들었다. 기존에 없는 건축 방식들을 시도한 결과 1885년 세계 최초의 근대식 고층건물 ‘홈 인슈어런스 빌딩’을 비롯한 빌딩숲이 형성됐다. 오늘날의 시카고는 ‘건축의 박물관’으로 불린다.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마천루를 보면 양식도, 재질도, 높이도 제각각이지만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시카고 대화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순식간에 퍼지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는 것뿐이다. 지난해 우리에게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와 닮았다. 어디서 어떻게 퍼졌는지 명확히 모르지만 우리의 1년을 송두리째 삼켜 버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카고 대화재는 국지적인 사고였던 반면 코로나19는 팬데믹, 즉 세계가 함께 앓았다는 것이다. 밀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너나없이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이 정도로 전 지구인이 공통된 감정을 가져본 것은 인류사에 전례가 없을 것이다.

어두운 터널에 갇힌 듯했지만 백신의 등장과 함께 이제는 출구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재앙을 함께 극복한 인류에게 주어질 대가는 개인위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진일보한 의료 기술, 신종 감염병 발생을 가속화하는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각성 등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다 같이 연대하며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실증해 낸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2021년을 맞아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얘기한 각계 22인의 이야기도 이와 같다. “가족, 친구, 동료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낯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잘 넘겨 전보다 더 강해질 우리의 모습”(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내년 첫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코로나#시카고 대화재#코로나 백신#2021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