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3법 통과’가 알려주는 내일[동아광장/강석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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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기업3법’, 군사작전 하듯 처리
다중대표소송 등 비용편익 분석 부실
기업 때리는 게 정의라는 인식 커지면
기업도, 시장도, 나라도 쪼그라들 것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지루하고 뻔한 논쟁이다.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 등 기업 관련 3법 이야기다. 정부는 관련 법 개정이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높이는 ‘특효약’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기업들은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막대한 유무형의 추가 비용을 지출하게 돼 국민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부는 이 법들을 ‘공정경제 3법’이라고 부르고, 기업들은 ‘기업규제 3법’이라고 부른다. 국회에서 공정과 비용이 만나면 어김없이 공정이 이긴다. 그렇게 3법은 국회를 여유 있게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 중에는 ‘대주주의 사익편취 규율 대상 확대’처럼 바람직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진이 남는 것은 충분한 토론과 엄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기업의 자율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정책은 이론적으로 정답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기업지배구조에서 경영자와 이사진,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에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 어떤 산업에 속한, 어느 기업이, 어느 정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게 적절하냐는 구체적인 질문에 정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기업정책의 최종 목표가 견제와 균형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과 영속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답을 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모든 종류의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견제와 균형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론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과학에 근거한 충분한 비용·편익 분석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은 기업 경영에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편익과 부담을 주는 비용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경영자의 불법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편익과 기업 경영이 중대한 위험에 노출될 경우의 비용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등에 대한 의무 지분 상향은 경제력 집중이 완화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편익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충분한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의 핵심 당국자들이 가진 기업에 대한 인식이다. 기업지배구조라는 사적 영역에 정책효과가 불분명한 법률을 도입하면서 헌법의 기본 가치인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강행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고,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강제적인 기업지배구조 정책을 군사작전 하듯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과 부도덕한 자본가들에 의한 독단 경영이 결합하여 경제력 집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따라서 ‘강자인 기업에 대한 모든 규제는 늘 선한 행위이고 부자인 대주주에 대한 각종 규제는 늘 정의롭다는 것’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것은 약자를 위한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 등이다.

핵심 당국자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 근시안적이면서 사안의 다양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관념적 사고라고 할 수밖에 없다. 모든 대기업은 순간의 강자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강자이기는 어렵다. 과거 망한 국내외의 무수한 대기업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대주주 경영자의 독단 경영이 기업과 소액주주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독단 경영과 함께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균형적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게 됐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국내 기준으로만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논하는 것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 국내 시장 기준 최대 기업이라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많은 기업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핵심 당국자들이 가진 기업에 대한 근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번 3법 사태는 향후 더 큰 강압적 규제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앞으로도 선악에 근거한 기업규제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더욱 세게 때리는 정책일수록 더욱 정의로운 정책이라는 인식이 강화될수록 기업도, 시장도 더 쪼그라들고, 그렇게 대한민국도 더 쪼그라들 것이다.

현재의 ‘586 청와대’는 아주 과거에 ‘정의의 사도’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2020년도에 1980년도의 사고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지금쯤은 자신들이 ‘우물의 사도’가 되었음을 자각했으면 좋겠다. 부질없는 바람일까?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기업3법#통과#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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