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비싼 값에 사라” ‘주파수 재할당’ 갑질 논란[광화문에서/김재영]

김재영 산업1부 차장 입력 2020-11-17 03:00수정 2020-1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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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1부 차장
때 되면 휴대전화를 바꾸다 보니 집에 굴러다니는 멀쩡한 휴대전화가 여럿 된다. 최신 스마트폰 광고를 보며 은근히 눈치를 보내도 아내가 눈도 깜짝 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년 전 개통한 아이폰4도 아직 쓸 만하다. 지금은 아이의 장난감 신세로 전락했지만 당시 16G 출고가 기준 81만 원의 거금으로 장만한 첫 스마트폰이다. 용돈도 궁한데 지금이라도 중고장터에 내놔도 될까. 살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출고가대로 받아야겠다고 우기면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하다.

해마다 최신 기종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기술(IT) 시장에서 옛 장비의 출고가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이동통신사들은 ‘10년 전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내년 6월 이용기간이 끝나는 2세대(2G), 3G, LTE 이동통신 주파수를 재할당하는 대가를 얼마로 해야 하는지를 놓고 얼굴을 붉히고 있다.

정부는 공공자산인 주파수를 이통사들이 5∼10년간 이용할 권리를 부여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 대개 처음 할당할 때는 경매로 가격을 정하고, 사용기한을 연장할 땐 정부가 재할당 대가를 매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재할당 때도 과거 경매 낙찰가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년간 5조7000억 원 정도를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통사들은 수요가 몰려 높게 낙찰됐던 과거의 경매가를 다시 반영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선다. 예전과 달리 3G, LTE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5G라는 대체재도 생겨난 상황에서 합리적 산정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용기간 5년, 매출성장률 3%를 반영해 1조5000억∼1조6000억 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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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요지부동이고 이통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할당 대가 산정방식을 공개해 달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가 하면 “차라리 시장가치대로 경매를 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규제산업인 통신산업에서 기업들이 ‘슈퍼갑’인 규제당국에 이렇게까지 맞서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국민의 자산인 주파수 가격을 시장가치만 고려해 책정할 순 없다. 정부로선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정가를 넘어서 과도하게 가격을 매길 경우 부작용도 우려된다. 2022년까지 5G 전국망을 갖추기 위해 통신사들이 26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재원 부족으로 투자가 지연될 수도 있다. 이통사들이 주파수 대역을 덜 받는 방식으로 대응할 경우 3G, LTE의 서비스 품질 하락이 불가피하다. 요금 인하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

서로 싸울 필요 없이 ‘법대로’ 하면 되는데 문제는 전파법에 명확한 산정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이통사가 저마다 유리한 조항을 근거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객관적이고 예측가능한 대가 산정이 가능하도록 국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7일 정부는 주파수 재할당 대가 산정방식에 대한 공개설명회를 연다. 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 되면 곤란하다.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디지털 뉴딜의 재원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주파수 재할당 갑질 논란#전파법#이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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