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본능 사이[이은화의 미술시간]〈13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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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1480∼1485년경.
산드로 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1480∼1485년경.
이중성은 인간의 천성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좋은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누구나 선악의 양면을 가지고 있고,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한다. 무엇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선인과 악인으로 나뉠 뿐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황금기에 활동했던 산드로 보티첼리는 이성과 본성의 관계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에는 실물 크기의 두 인물이 그려져 있다. 왼쪽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 켄타우로스로, 성질이 난폭하고 호색적인 데다 술을 좋아하는 괴물이다. 오른쪽은 지혜와 전쟁의 여신 팔라스 아테나로,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네르바와 동일 인물이다. 팔라스는 ‘창을 휘두르는 자’란 뜻으로 아테나를 이르는 호칭이다. 화살을 든 켄타우로스는 미늘창을 든 팔라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근육질의 야수 같은 외모와 달리 여신에게 완전히 제압당해 겁먹은 모습이다. 켄타우로스는 절제를 모르는 본능과 욕정을, 팔라스는 이성과 지혜를 상징한다. 해서 그림은 오랫동안 본능을 제어하는 이성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 밖에도 정치적, 종교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돼 왔다.

팔라스의 드레스에는 다이아몬드 반지 세 개가 결합된 메디치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머리에는 월계관을 썼다. 이는 그림의 주문자이자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를 암시한다. 그러니까 화가는 자신의 후원자인 군주를 탐욕과 본능을 이겨낸 지혜로운 승자의 이미지로 영원히 화폭에 새기고자 했던 것이다.

본능을 항상 억제하고 사는 건 사실 힘든 일이다. 선택 앞에서는 누구나 흔들리고 갈등한다.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는 그 자체가 이런 이중성의 표본이기도 하다. 이성에 길들여지면 온순한 인간에 가까워질 테지만, 짐승의 본능에 잠식되면 파괴적인 괴물이 되고 만다. 좋은 사람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않도록 이성이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산드로 보티첼리#팔라스와 켄타우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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