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실종부터 피살 발표까지 사흘간 ‘대한민국’은 어디 있었는가

동아일보 입력 2020-09-26 00:00수정 2020-09-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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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 공무원인 우리 국민이 서해에서 실종된 이후 군 당국이 북한에 의한 만행을 규탄할 때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의 실종부터 사망까지 34시간, 특히 북한군이 그를 발견해 사살하고 불태울 때까지 6시간 동안 우리 군은 북한 동향을 포착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그 만행을 보고받고도 36시간이나 공식 대응을 미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도 만행 10시간 뒤였다고 한다.

우리 정부와 군이 보여준 대응은 과연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최우선 책무가 방기됐던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정부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정부는 “첩보 수준이어서 사실 확인이 먼저였다”고 하지만, 정부가 한 것이라곤 실종 직후 군경을 동원한 수색작업과 만행 19시간 뒤 전통문을 보내 북한에 ‘문의’한 것이 전부였다.

수수방관이나 다름없는 정부 대응에 대한 의문들은 결국 대통령을 향할 수밖에 없다. 심야에 장관회의까지 열린 사안을 문 대통령은 전혀 모른 채 하룻밤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니 야당에서 당장 문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라며 전직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비교하는 것도, 대통령의 부지(不知)를 내세워 온갖 논란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문화공연까지 관람했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는 사건이 처음 언론에 알려질 당시부터 흘러나온 ‘월북 시도 가능성’ 부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누구도 단정하기 어려운 추정 첩보를 발설한 것은 처참한 죽음의 의미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그게 맞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탈북민을 배신자로 취급하는 북한 정권과 같을 수 없으며, 정부의 보호 책무에 경중이 달라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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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한 만행은 야만적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만약 대통령과 정부, 군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충실히 대응하고 역할을 제대로 했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당한 그 참혹한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은 대한민국이 보여준 모습에 참담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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