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분열을 먹고 자란다[광화문에서/신광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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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차장
신광영 사회부 차장
텅텅 비어가는 마트의 생필품 진열대에서 미국의 코로나는 시작됐다. 올해 봄 나는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정부의 물자 관리를 믿지 않았다. 코로나가 퍼질수록 마트 계산대 앞 카트 행렬이 길어졌다. 방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여부에 따라 갈렸다.

민주당 주지사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며 빗장을 내걸 때 텍사스, 조지아 등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주는 영화관, 미용실 등을 열어젖혔다. 주지사들은 서로 비난했고, 트럼프는 한쪽 편을 들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정치 성향에 따라 마스크를 쓰거나 안 썼다. 이런 분열과 불신이 코로나에게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해 준 듯했다.

요즘 거리 두기는 ‘시대정신’이 됐지만 불신으로 벌어진 거리는 코로나에게 ‘틈새시장’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악성 확진자’들이 잇따르는 건 위험신호다. 광화문 집회에 참가해놓고 동선을 숨겨 자녀와 이웃을 감염시키고, 수백 명을 진단검사로 내모는 행태에 우리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을 향한 분노가 커질수록 잠재적 확진자들은 낙인과 배제의 공포에 갇힌다. 그로 인해 결국은 공멸로 이어질, 자멸적 선택을 하기 쉽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간의 정서적 균열이야말로 코로나에겐 최적의 생태계다.

코로나는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찾으려 숙주들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최근 광화문 집회 허용을 두고 법원은 상반된 결론을 내놓았다. 서울행정법원의 5개 재판부가 10건의 집회 신청을 나눠서 심사해 4개 재판부가 8건을 금지했다. 다만 1개 재판부가 2건의 집회가 열리도록 허용했다. 집회 장소와 규모가 비슷했지만 재판부의 시각은 엇갈렸다.

4개 재판부가 “집단 감염 등 최악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본 것을 1개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는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4개 재판부가 “방역상 안전하다고 확신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면 1개 재판부는 “위험하다고 확신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집회가 허용될 경우 다른 시위대까지 몰려들어 통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집회 금지는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재판부의 문제의식 또한 가볍지 않다. 정치권에선 이 판결을 비난하며 또 다른 갈등을 만들고 있다. 이는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린 뒤 자중지란을 부추기는 전략을 취해온 코로나가 바라던 바일 수 있다.

전공의 집단파업 역시 우리가 직면한 고난도의 시험이다. 의료인들이 ‘국민영웅’에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는 프레임의 전환을 코로나는 몹시 기다릴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의료공급 확대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결정적 계기인 동시에, 그렇다고 공급 확대를 밀어붙이면 의료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엄정한 법 집행” “살아있는 공권력”을 강조하는 낯선 풍경을 요즘 자주 보게 된다. 그만큼 방역은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폐쇄, 추적, 구속 등의 험한 언어에 주눅 들지 않는다는 게 코로나가 가진 지독한 저력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가 올 상반기 진행한 국민위험인식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 경보가 주의→경계→심각으로 격상될수록 확진 시 돌아올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 3단계로 올라갈수록 방역 철학도 보다 유연하고 균형을 잡는 쪽으로 성숙해져야 함을 보여주는 결과다.

단호함은 선을 긋고 누군가를 고립시킬 때보다 분열과 불신을 메우는 데 쓰일 때 더 강력할 수 있다. 코로나는 이런 ‘신뢰 방역’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코로나19#분열#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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