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식 북핵 평가 지양돼야[윤상호 전문기자의 국방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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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핵폭발을 방불케 하는 대형 폭발 직후 거대한 불기둥과 충격파가 일어나고 있다. 레바논 시민 SNS 캡처
4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핵폭발을 방불케 하는 대형 폭발 직후 거대한 불기둥과 충격파가 일어나고 있다. 레바논 시민 SNS 캡처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강타한 폭발 참사는 도심과 가까운 항구 창고에 6년 동안 방치됐던 다량(약 2750t)의 질산암모늄이 원인이었다.

농업비료이자 민간용 폭약의 주재료인 질산암모늄은 가연성이 높아 운송과 보관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고위험 폭발물질이다. 사고 당시 핵폭발과 같은 거대한 충격파와 버섯구름,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가 그 위력을 실감케 한다. 질산암모늄 1kg은 군용폭약(TNT) 0.42kg의 폭발력과 맞먹는다. 1000t 남짓한 TNT를 한꺼번에 터뜨린 것과 같은 폭발 사고는 레바논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번 참사를 통해 북핵 위협의 심각성을 절감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베이루트 폭발은 1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급 소형 핵무기의 파괴력으로 도시가 초토화되고, 국가 체제가 마비될 수 있음을 실증한 사례라고 필자는 본다. 이보다 수백, 수천 배의 위력을 가진 핵무기를 다량 보유한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이 얼마나 가공할 수준인지는 국내외 연구 결과로 여실히 증명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지난해 ‘누크맵(NUKEMAP)’이라는 핵폭발 시뮬레이션을 통해 북한의 6차 핵실험 규모(최대 230kt)의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지면 3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6차 핵실험에서 수소폭탄급 핵무기의 위력을 과시한 북한은 더 강력한 메가톤(Mt)급 핵탄두 개발에도 눈독을 들일 공산이 크다. 단 한 발로 서울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절멸(絶滅) 무기’가 북한의 수중에 쥐여지는 사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북한의 핵위협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 임계점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이달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북한의 핵 소형화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통상 소형 핵탄두는 ‘지름 90cm, 무게 1t 미만’이다. 탄도미사일에 실어 날릴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볍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핵보유국은 첫 핵실험 후 5년 내 핵소형화를 달성했다. 인도 파키스탄도 최초 핵실험 후 10년 안팎의 기간에 미사일 장착용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1차 핵실험 후 14년이 흐른 북한의 핵소형화는 진즉에 완성 단계에 진입한 걸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개한 장구 모양의 핵탄두보다 더 정교하고 위력이 세진 소형핵을 개발해 양산 중일 개연성이 크다. 더 나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다탄두 핵무기나 1kt 안팎의 전술핵도 머잖아 전력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미 육군은 지난달 ‘북한 전술 보고서’에서 북한이 최대 6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고, 해마다 6개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걸로 평가했다. 북한이 올해 안에 핵무기를 최대 100개까지 보유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부터 ICBM까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 배치하는 것은 북핵 사태의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군과 정보당국은 2015년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핵소형화가 ‘상당한 수준’이지만 완성 단계는 아니라는 평가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레토릭(수사)’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의 이런 태도가 북핵 위협의 실체를 가리는 주범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 비핵화 협상 와중에도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에 몰두한 증거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북핵 위협이 ‘답보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과 같다.

아울러 북한의 핵은 대미 협상수단일 뿐 같은 민족을 겨냥한 ‘실전무기’가 아니라는 일부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안이함도 북핵의 본질을 호도하는 주요인이다. 북핵 위협은 날로 고도화되는데 우리의 현실 인식은 되레 무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을 정부 당국은 곱씹어보길 바란다. 북핵 대응은 그 실체적 위협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북핵 평가는 지양돼야 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
#질산암모늄#베이루트 폭발 참사#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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