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애국가 표절 주장[현장에서/유윤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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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은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 주장을 펴 논란을 불렀다. 뉴시스
김원웅 광복회장은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 주장을 펴 논란을 불렀다. 뉴시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도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부분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를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했다.

실제 안익태의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를 베꼈을까. 이 ‘설’은 56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1964년 안익태가 추진위원장을 맡은 서울국제음악제가 열렸다. 이때 내한한 불가리아계 미국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가 기자회견을 열어 주최 측의 계약 위반을 비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 애국가 몇 소절은 내 모국 불가리아 민요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니콜로프는 그가 말한 민요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를 불러 보이기도 했다.

이 민요는 정말로 ‘애국가’와 닮았을까. 유튜브에 올라온 연주와 악보를 살펴보면 닮은 부분이 존재한다. 애국가는 음계상 ‘솔 도∼시라 도 솔’로 시작한다.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는 ‘솔 도∼시라 <시> 솔’로 시작한다. 애국가의 ‘길이 보전하세’와 같은 ‘솔 도 레 미 도’의 진행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닮았다’고 하기는 분명히 무리다. 두 노래는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 3악장 주선율과도 닮았다. 심지어 북한의 ‘애국가’도 ‘솔 도 시라 솔’로 ‘애국가’와 닮은 음 진행으로 시작한다. 선율 구조 일부가 닮았다고 표절이라면,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도입부는 구노 ‘아베마리아’의 표절이다. 또 말러 ‘대지의 노래’ 첫 곡은 슈만 ‘교향적 연습곡’, 차이콥스키 ‘렌스키의 아리아’는 리스트 ‘오베르만의 골짜기’의 표절이 된다.

안익태와 같은 세계적 작곡가가 외국 민요를 빌려야 할 정도로 음악적 상상력이 빈약했을 리도 없다. 한 나라의 국가는 깊은 음악적 영감을 필요로 하지만, 애국가의 선율 구성만 보면 ‘표절’이 필요한 고난도 작업이 아니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애국가의 음악적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 온 국악 작곡가 김정희도 ‘안익태가 표절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선율이 유사한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안익태의 ‘애국가’가 국가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음악적으로는 못갖춘마디를 연상시키는 박자로 시작하지만 실제 못갖춘마디로 이어지지 않는 선율 구성상의 결함, ‘동해물’ ‘백두산’ 대신 ‘해물과’ ‘두산이’가 하나로 묶이는 강세(악센트) 문제가 있다. 또 안익태가 ‘대한민국 국가 작곡가’로 적합한 삶을 살았는지도 열린 눈으로 재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설’에 그쳐온 ‘애국가 표절’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특정 의도에 끌어 맞추기 위한 무리한 주장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애국가#표절#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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