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이승엽처럼, 은퇴는 ○○○처럼[광화문에서/이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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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마지막 날까지 그는 ‘국민타자’다웠다. 2017년 10월 3일 프로야구 정규시즌 최종전. 삼성 이승엽(44)은 1회말 첫 타석에서 넥센(현 키움) 한현희를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기는 대형 홈런을 때렸다. 타구는 무려 150.4m를 날아갔다. 그해 KBO리그에서 나온 모든 홈런을 통틀어 가장 큰 홈런이었다.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아치를 그렸다. 23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 은퇴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이라니….

대스타답게 은퇴는 화려했다. 그해 10개 구단은 이승엽에게 KBO리그 사상 첫 ‘은퇴 투어’를 열어줬다. 각 구장 마지막 방문경기마다 상대팀들은 이승엽을 위한 특별 선물을 준비했다. 한화는 보문산 분재를, 롯데는 순금 10돈을 들여 ‘홈런 잠자리채’를 마련했다. 두산은 달항아리 도자기에 이승엽의 좌우명을 새겨 전달했다. 그렇게 그는 누구보다 영광스럽게 퇴장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승엽 못지않게 멋있게 은퇴한 선수가 있다. LG와 SK 등에서 활약하다 2010년을 끝으로 은퇴한 김재현(46)이다.

한 해 전인 2009년 김재현은 1년 후 ‘예고 은퇴’를 선언했다. “예전부터 힘이 있을 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미루다 보면 언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고 결국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 대신 남아있는 매 타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은퇴 시즌이었던 2010년. SK 주장을 맡은 그는 주연보다는 조연을 자처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엔 역시 주인공이었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역전 결승타를 쳤다. 기선을 제압한 팀은 결국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최근 야구계에서는 LG 베테랑 박용택(41)의 ‘은퇴 투어’가 큰 논쟁이 됐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은퇴 투어’를 제안하고 소속팀 LG가 이를 추진하려 했지만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승엽급의 스타가 아니다’ ‘LG의 레전드지 리그의 대표 선수는 아니다’ 등등이 이유였다.

결국 박용택이 스스로 매듭을 지었다. 부상에서 회복해 11일 1군에 올라온 박용택은 “은퇴 투어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제 은퇴는 오늘부로 딱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그는 “현재 팀이 정말 소중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 하고 헹가래 받고 은퇴식 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은퇴 투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용택이라는 선수의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다. KBO리그에서 그는 역대 가장 많은 2478개의 안타를 기록 중이다. 팬들에게 항상 친절하려 애썼고, 각종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 2009년 타격왕 밀어주기 사건으로 환영받지 못한 타격왕에 오른 뒤에는 여러 차례 솔직하게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19년간 한 번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그가 멋진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7년의 이승엽은 화려했지만 그해 팀은 9위에 그쳤다. 반면 2010년 김재현의 SK는 순위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제목의 ○○○에는 박용택의 이름 석 자가 들어가길 응원한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프로야구#이승엽#은퇴#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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