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한민국 검찰은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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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7월 30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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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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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칭했다고 다 개혁이 아니다. 법무부가 설치한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27일 발표한 검찰총장 지휘권 박탈 권고안은 이 조직의 반(反)개혁성을 극명히 드러낸다. 윤석열 검찰총장만 분재(盆栽)총장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법무부 장관이 전국의 고등검사장들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케 함으로써 사실상 검찰의 정권비리 수사를 금지시킨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사정없이 박살내는 내용에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런 권고안을 보고도 가만있다니, 대한민국 검찰은 배알도 없나.

다음 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김남수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법무부 장관이 고검장에게 직접 (수사)지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공개질의에 30일 오전까지 180여 명의 검사들이 실명으로 지지 댓글을 붙여 올렸다. 다행이다. 대한민국 검사가 아직 살아있어서.

● 검개위, 검찰을 청와대의 충견으로

검개위가 보도자료에서 밝혔듯,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주고 2년 임기를 보장한 것은 정치권력의 압력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하라는 취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진정 검찰개혁 의지를 가졌다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해야 했다. 검찰이 불신을 받는 것은 정치권력의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고, 법무부 장관은 지휘권을 광범위하게 행사해 정치적 영향을 작동시키는 정황이라고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논문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한인섭은 문재인 정부 1기 검개위원장을 지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도 가까운 진보적 법학자다(조국 자녀의 인턴 의혹에도 관련돼 있다). 한인섭이 제시한 검찰개혁 핵심이 인사·예산의 독립과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최소화였다(1999년 서울대법학 ‘한국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세계적으로도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은 독일 나치시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된 흑역사가 있다. 지금은 장관 지휘권 행사가 거의 불가능함에도 유럽평의회에선 그마저 폐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본떴다는 일본에서도 1954년 조선의옥(造船疑獄) 사건 때 딱 한 번 지휘권 발동 뒤 장관이 사임해 더 이상은 없다. 이런 수사지휘권을 대한민국 장관이 고검장들에게 행사하겠다는 건 검찰을 청와대 충견 만들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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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노무현 서거로?

권고안을 만든 검개위원장 김남준 변호사는 민변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 때 헌정 사상 최초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내 수사지휘권 문제와 묘한 인연이 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고뇌 끝에 지휘권을 수용하고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심히 유감”이라는 발표문을 남기고 사퇴했다. 그러자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이 “검찰권 독립이란 민주적 통제 아래서만 보장되는 것”이라며 검찰총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격렬히 비난한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5년이 흐른 3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정청 권력기관개혁협의에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밝혔다.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거부할 수 없는 포스를 뿜어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가 붙었다고 다 민주는 아니다. 쉽게 말해 검찰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내려 보내는 어명(御命)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은 것은 왜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집권세력이 검찰을 장악하려는 것이냐다. 2009년 전남대 이채언 교수가 쓴 ‘노무현 서거 이후의 국내외 정세’ 라는 논문은 문 정부의 집요한 검찰통제 기도를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

“노무현의 서거는 형식상의 민주주의인 1987년 체제를 이대로는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87년 체제의 첫 번째 문제점이 검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 놓은 것”이라는 내용이다(두 번째 문제점은 경제의 독립).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은 검찰과 경제를 실질적으로 다시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다(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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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좀비가 될 것인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정말이지 믿고 싶진 않지만 검찰을 다시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완성이고, 마르크스주의 실현이고,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라면…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당신들 원하는 대로 하는 수밖에(나라가 니꺼냐, 외쳐봤자 소용없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는 임기가 1년이나 남아 있는 윤석열을 자진 사퇴시키려고 수사지휘권 발동은 물론 온갖 모욕적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다. 조국이 장관으로 앉아있어도 같은 일을 했겠지만 추미애는 향후 서울시장을 거쳐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과거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다는 ‘원죄’를 씻으려 애쓴다는 티가 역력해 안쓰러울 뿐이다.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것은 죽은 권력에 강하고 산 권력에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5년에 한 번은 거악(巨惡)을 척결해 일거에 명예를 회복해온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추미애가 최악의 인사를 자행하더라도 윤석열은 독립운동 하듯 조직을 규합해 울산시장 선거 비리 의혹 등 정권비리 수사를 악 소리 나게 해냈으면 한다. 아니면 지금까지 정치권력의 압력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반(反)문 정치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좀비처럼 총장 임기를 지킬 텐가, 아니면 대통령에 도전할 텐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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