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할머니 52년생 장명숙[광화문에서/김유영]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입력 2020-06-26 03:00수정 2020-06-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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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일흔에 가까운데 청춘들이 열광하는 할머니가 있다. 은발 커트 머리가 예사롭지 않다. 파마도 염색도 안 했다. 나긋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튜브 밀라논나 채널을 운영하는 장명숙 씨(68)다. 유튜브 활동 반년 만에 구독자 수 50만 명을 거뜬히 넘겼다. 초반에 대학 교양강의 같다며 몰려든 젊은이들이 이제는 인생수업이라 칭한다.

일단은 직업적인 내공. 1978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패션 유학을 떠나 한국에 페라가모를 들여오는 등 패션 바이어로 활약했다. 유튜브에서도 명품 매장을 방문해 어떤 스타일의 옷인지, 해당 브랜드는 어떤 특성과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등 전문가가 아니면 못 할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지 매장 섭외까지 해서 촬영한 것도 네트워크가 탄탄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평생직업이 필요한 시대에 그는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어 평생의 인맥과 지식을 밑천으로 여전히 일하고 있다.

압권은 상담 코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사람에게 “내가 할 만큼 했는데도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다면 관계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것”이라며 “나의 귀한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마음의 지옥에 가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선배가 여전히 편한데 연차가 올라 후배가 어렵다’는 젊은 직장인에게는 “수평적 관계에서 선배에게 일을 배웠을 때의 고마움을 후배에게도 느끼게 해주라”고 제안한다.


찌들지 않은 모습에 ‘애는 없겠거니’ 짐작할 법도 하지만 그는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하루 6시간도 못 자는 시간 빈곤자였던 그는 건빵을 점심으로 많이 먹었다. 빨리 끼니를 때울 수 있어서다. 워킹맘의 어려움을 알기에 “모두 다 잘하기는 애초부터 힘드니 회사에 있을 땐 회사에, 집에 있을 땐 집에 충실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조언’을 한다. 시부모가 입원하면 출근 전 죽까지 쒀서 병원에 갔지만, 정작 자신은 아들에게 “10번 결혼해도 되니 나만 귀찮게 하지 마”라고 말하는 ‘쿨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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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패션 유튜버지만 극도의 간결을 유지한다. 화장품은 비싸지 않은 토너에 친구가 만들어준 크림을 쓰는 게 전부다. 많다고 좋은 게 아니고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 밀라노의 작은 집에는 조부모의 장롱이나 100년 된 거울 등을 놓고 쓰며 비싼 가구도 대체 못 할 가치를 보여준다.

그가 습관처럼 하는 말은 “재밌지 않아요?”이다. 새로운 경험이라면 힘든 것도 재밌다는 지론. 그래서인지 침대 머리맡에 이탈리아어 사전을 놓고 자기 전에 들여다보며 올 초엔 휴대전화를 새로 사서 새로운 기능을 익혀 더 배워 보겠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이런 모습에 자신의 미래 모습을 투영해 대리만족하는 걸까.

“나이 먹는다고 다 어른 아니잖아요. 그냥 늙는 사람도 얼마나 많아요. 제게도 닮고 싶고 의지할 수 있는 근사한 어른이 간절하던 차에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함을 지키며 노년의 현명함과 젊은이의 호기심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 고령화 시대에 나이 든 사람에게는 젊은이와 소통할 수 있는 법을,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나이 들면 좋을지를 떠올려 보게 해준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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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생 장명숙#인생수업#미래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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