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참전용사를 울린 마스크 5장[현장에서/김윤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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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주프랑스 대사(왼쪽)가 자크 그리졸레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세르주 아르샹보 씨(오른쪽)에게 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최종문 주프랑스 대사(왼쪽)가 자크 그리졸레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세르주 아르샹보 씨(오른쪽)에게 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한국인들은 최고의 형제예요. 한국을 도운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27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파리 7구에 위치한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1층. 군(軍) 의장복을 차려입은 프랑스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은 90대 고령에도 힘이 넘쳤다. 프랑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3만 명에 육박하는 등 코로나 피해로 사회가 휘청거리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참전용사들이 모인 이유는 ‘마스크’ 때문이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마스크 100만 장을 22개국 참전국에 보냈고, 이날 대사관에서 프랑스에 할당된 2만 장의 마스크 전달식이 열리게 된 것. 프랑스는 6·25전쟁 당시 3400여 명을 파병했고, 274명이 전사했다.

현장에서 만난 자크 그리졸레 씨(92)는 중사 신분으로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고 했다. 1951년 9, 10월 진행된 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해 3개 고지를 되찾았다. 그리졸레 씨는 “프랑스 사회복지기관보다도 한국이 더 먼저 참전용사들을 챙겼다”고 말했다. 이등병 신분으로 강원 철원 일대의 ‘철의 삼각지 전투’에 참전했던 세르주 아르샹보 씨(90)는 “70년간 우리를 기억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이들의 애정도 절절히 느껴졌다. 그리졸레 씨는 한글 문양이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자들을 한국의 외국인 학생 캠프에 보냈다고 했다. 아르샹보 씨는 “한국인들 모두 건강하냐”고 안부를 물었다. 르파리지앵, 웨스트프랑스, 프랑스3 등 주요 언론들도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가 전달된 사연을 소개했다.

그런데 마스크 기증이 프랑스 사회에 알려진 데에는 이날 2만 장의 마스크가 전달되기 전 주프랑스 대사관 차원에서 미리 소량의 마스크를 보낸 게 결정적이었다. 4월 초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하자 대사관은 십시일반 마스크를 모아 연락이 닿는 참전용사 56명에게 우편으로 마스크 5장씩을 보냈다. 봉쇄령이 풀린 현재와 달리, 당시에는 매일 코로나19 피해자가 급증했고, 마스크 공급도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다. 마스크 1장이 귀했던 시기에 우편함을 열자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마스크 5장을 선물받게 되니 참전용사들이 크게 감동한 셈이다. 이들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줬다. 가족들이 이달 초부터 마스크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프랑스 주요 언론들까지 사연을 소개하게 된 것이다.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참전국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각종 행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상당수 취소됐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위안을 하자면 감동은 거창한 행사보다는 작은 관심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5장의 마스크에서 한국의 큰 사랑을 느꼈다는 프랑스 참전용사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6·25전쟁#프랑스 참전용사#마스크#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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