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직장인-자영업자 부담 형평성이 관건[인사이드&인사이트]

박성민 기자 , 송혜미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 입력 2020-05-18 03:00수정 2020-05-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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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언급이후 논의 가속
전체 취업자 중 가입 절반 못미쳐… 코로나 이후 일자리 감소 심각
고용안전망 확대 필요성 공감대… 유럽 국가들 지속적 제도 보완
佛, 보험료 없애고 세금으로 충당… 덴마크, 민간 실업보험기금 활용
정부, 특수고용직부터 확대 목표… 자영업자는 소득 파악 어려워 난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 2분기(4∼6월) 전 세계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지난해 4분기(10∼12월)보다 10.5% 감소할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3억500만 개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코로나와 세계 일자리’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이보다 3주 전 내놓은 전망보다 실직 규모 추정치가 1억 명 이상 늘었다. 취약계층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ILO는 세계 노동인구(약 33억 명)의 약 절반인 16억 명 이상이 소득 급감으로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전 세계가 고용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지난해보다 47만 명 이상 줄었고, 구직을 단념한 비경제활동인구는 약 83만 명 늘었다. 이로 인해 고용안전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 이슈가 급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고용보험의 단계적 확대”를 강조했고, 다음 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예술인을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다음 단계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고용 종사자(특수고용직)다. 장기적으로 5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까지 고용보험 대상에 넣는 게 정부의 목표다. 지난해 8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는 약 1353만 명. 전체 취업자의 49.4%다.


취약계층을 보호할 촘촘한 고용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데는 전문가도 이견이 없다. 다만 새롭게 편입될 수급자에게 보험료를 얼마나 부과할지, 정부 재정을 얼마나 어떻게 충당할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고용보험을 도입한 유럽 각국도 끊임없이 제도를 보완하며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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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자영업자 포함하고 세금 인상

“어려울 때 수입을 보존해주는 제도가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사는 토리 씨(45)는 현재 학생들에게 음악 레슨을 해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는 음악 연주자였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술인 고용보험인 ‘앵테르미탕’(intermittent du spectacle) 덕분이다.

이제는 공연을 하지 않고 레슨이 끊겨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18년 9월 고용보험법을 대폭 개정했다. 기존 임금근로자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자발적 퇴직자까지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게 핵심 내용. 토리 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자영업자로 인정돼 실업급여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자영업자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용보험료를 면제했다. 형평을 기하기 위해 임금노동자도 고용보험료 납부를 없앴다. 기존에는 고용보험 요율 5.0%(2018년 기준) 가운데 사용자가 4.05%, 노동자가 0.95%를 각각 분담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사용자만 4.05%를 부담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 국민의 부담이 사라진 건 아니다. 프랑스는 사회보장 조세인 사회보장일반기여금(CSG)을 더 많이 부과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충당하기로 했다.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실업자 보호를 강화한 것이다.

다른 나라 사정도 비슷하다. 고용안전망을 촘촘히 하려면 추가 재원이 필요하기에 각국은 자국 특성에 맞는 묘안을 짜냈다. 덴마크의 고용보험제도는 20개 이상의 민간 실업보험기금에 개별 가입하는 형태다. 가입자들은 기금에 따라 매달 8만∼9만 원가량을 낸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취업자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대신 부족한 돈은 정부가 부담한다. 실직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의 50∼75%가량이다. 오스트리아는 보험료율이 6%로 상대적으로 높다. 소득이 가입 기준에 못 미치는 자영업자는 8%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 소득 파악, 재원 확보가 관건

유럽의 선례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이 무턱대고 따라갈 수는 없다. 나라마다 산업구조와 자영업자 비중 등 노동시장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근로자를 주된 타깃으로 한 국내 고용보험은 아직 관련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우선 특수고용직부터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특수고용직 약 220만 명 중 정부가 임금근로자의 성격이 강하다고 파악하는 대상은 48만 명이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인 9가지 특수고용직은 사용자가 비교적 명확해 고용보험 적용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택배기사, 대리운전 기사, 카드 모집원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갑자기 보험료 부담을 떠안을 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들은 등록만 돼 있을 뿐 활동을 쉬는 경우도 많다”며 “개인사업자처럼 일하는 설계사들까지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자영업자처럼 자율에 맡겨 달라는 요구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대학원장)는 “일부는 자발적으로 일을 쉬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기존 가입자와의 역차별 문제가 부각되면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까지 확대하는 건 풀어야 할 과제가 더 많다. 우선 보험료를 산정하는 소득 파악이 어렵다. 현재 자영업자는 1∼7등급의 기준보수를 선택해 보험료를 낸다. 보험료율 2.25%를 적용하면 월 보험료는 4만950∼7만6050원이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1등급을 선택한 1인 자영업자는 전액, 2등급은 50%가 지원된다. 가령 5등급 자영업자는 월 6만4350원을 내고 매달 143만 원을 가입기간에 따라 4∼7개월 받을 수 있다.

2012년부터 자영업자도 임의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올 3월 기준 고용보험에 가입한 1인 자영업자는 1만5549명에 불과하다. 전체 1인 자영업자(405만 명)의 0.38% 수준이다. 이는 자영업자 스스로 가입을 꺼리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소득과 재산이 노출돼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의 부담이 늘어나는 걸 우려해서다.

○ ‘제2 고용보험’ 도입 주장도

고용보험 대상 확대는 결국 재원 문제와 직결된다. 지난해 실업급여로 지급한 돈은 8조913억 원. 적자 폭은 2조 원이 넘었다. 고용보험기금은 2년 연속 적자다. 프랑스처럼 자영업자 고용보험료를 정부가 부담하려면 재원 마련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독일은 자영업자 보험료(보험료율 3%)를 전액 가입자가 낸다.

기존 임금근로자들은 자신들이 낸 돈이 상대적으로 고용이 불안한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자에게 지급되는 걸 원치 않는다. 이 때문에 별도 기금으로 고용보험을 운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른바 ‘제2 고용보험’이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영업자에 대해선 별도의 사회보험을 마련해 가입을 촉진시킨 뒤, 소득파악 체계가 정비되면 단일 고용보험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 고용보험은 해고·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사유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의 생계·구직활동을 지원한다.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퇴사한 노동자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매출이 줄거나 적자로 인해 문을 닫으면 ‘비자발적 실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영업자를 고용보험에 포함시키려면 이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운영 중인 ‘부분 실업급여’를 국내 자영업자에게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네덜란드에선 풀타임 일자리를 그만두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절반의 실업’으로 인정해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자영업자의 무분별한 폐업을 막고 일시적인 위기만 넘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보험처럼 가입자가 보험료와 수급액을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자는 의견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가입자가 세 가지 형태의 보험료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마다 수입 구조가 달라 균일한 형태의 고용보험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보험료와 급여를 다양화하면 자발적 가입을 늘리고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송혜미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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