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노인을 위한 ‘마음’은 있다[광화문에서/김윤종]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0-05-07 03:00수정 2020-05-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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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파리 특파원
프랑스 파리 시내의 아파트 내에는 몇 주째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이후 아파트 앞뒤 마당을 산책하는 노부부들이 크게 늘었다. 감염 두려움이 크다 보니 아파트 주변만 빙빙 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곳에서 한 70대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눴다. 1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노인요양시설(EHPAD)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지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코로나로 더 힘들어요…. (젊은 사람들이) 결국 수년, 수십 년 후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유럽은 ‘고령사회 롤 모델’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고령사회를 미리 겪은 프랑스도 노령연금 등 각종 정책이 비교적 잘 갖춰진 편이다. 그런 유럽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곳은 노인 요양시설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 요양원에서는 최근 한 달 동안 110명이 사망했다. 영국도 사망자의 40%가 요양시설에서 발생했다. 스페인에서는 노인을 방치하는 요양시설 직원들이 속출했다.

기저 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이 집단 거주하며 열악한 위생 상태에 놓이다 보니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단계적 봉쇄 완화에 나선 유럽 주요국들은 고령자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노인들은 올해 말까지 격리될 수 있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영국, 프랑스 정부는 봉쇄 해제 후에도 고령층은 별도로 격리를 지속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를 거부하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찬반 논란이 거세다. 파리 시내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몸이 불편해 주변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봉쇄는 큰 고통”이라며 “학교나 직장이 속속 정상화되면 은퇴한 노인은 상대적 고립감이 클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독일 베를린 내 상담센터는 우울감을 상담하는 고령층 전화가 5배 급증했다. 고립 장기화는 고령층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브리검영대 연구 결과 고립감이 큰 사람은 심장질환은 29%, 뇌졸중 확률은 32% 증가했다. 외로움을 느끼면 면역체계도 약화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유럽에도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라는 한탄이 많아진 이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까지 소셜미디어에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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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최근 프랑스 리옹의 한 요양원이 유럽 사회를 감동시켰다. 이 요양원은 106명 노인이 집단생활을 했지만 단 1명도 감염되지 않고 건강했다. 의료장비 등 시설이 뛰어나거나 남다른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직원 12명이 힘을 합쳐 요양원을 봉쇄한 채 노인들을 돌본 게 주요했다. 특단의 노인 코로나 대책보다는 고령층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절실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노인의학 전문가 마크 E 윌리엄스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늙으면 짐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편견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간다는 사실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조금만 더 ‘미래의 나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다면 고령층의 코로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더라도 노인을 위한 ‘마음’은 누구나 키울 수 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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